역경 이겨낸 성공농업인(8)경북 문경 천석명씨

입력 : 2013-03-04 00:00

소 2마리·여우 10마리 사서, 농사짓겠다며 귀향길 올라
문자사과 못 팔아 ‘발동동’, 일등 문경사과 만들기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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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가지치기 작업중이던 천석명씨가 ‘동구밖 과수원길’이라는 예쁜 이름을 내건 과수원에서 아내 박명숙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어휴, 그 여우 얘기는 그만합시다.”

꼭 30년 전. 낯설고 물설은 타향살이에서 모은 돈으로 소 2마리와 여우 10마리를 사서 고향길에 오른 총각이 하나 있었다. 그는 지금 3만3000㎡(1만평) 규모의 사과밭을 경영하면서 아내와 3명의 자녀를 둔 ‘억’ 소리 나는 부자농군으로 대변신했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사과박사’ 천석명씨(53) 이야기다. 그는 살림이 어려워 공부도 마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도회지를 전전해야 했다. 그러다 24세가 되던 1980년대 중반 도시생활을 접고 부모님 모시고 농사짓겠다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농사 밑천은 소 2마리와 여우 10마리.

“빈손으로는 고향 땅을 밟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모은 돈을 털어 소와 여우를 샀습니다. 그저 소는 살림밑천이고 여우는 당시 모피가축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신문기사만 믿었죠.”

여우농사는 미국의 경기침체로 모피시장이 위축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여우농사를 접은 그는 당시 문경에서는 생소한 멜론농사에 뛰어들었지만 남쪽 멜론주산지와는 애초부터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멜론에 실패하고 다시 고구마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멀리 전라도까지 가서 수입 고구마 품종을 구해다 심었지만 토질과 기후가 맞지 않아 수확도 못해봤습니다.”

거듭된 영농실패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것은 1988년. 형이 소개한 부산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한 그는 사과농사에 인생을 걸기로 하고 남의 땅을 빌려 나무를 심었다.

“사과나무 사이에 고추농사를 지었지만 먹고살기가 빠듯했습니다. 집사람이 고생 참 많이 했습니다.” 그가 얘기를 꺼내자 옆에 있던 아내 박명숙씨(51)의 눈가에는 이슬이 살짝 비쳤다.

1990년대 중반부터 사과수확이 시작되면서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지만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 남북정상회담 등에 고무돼 천씨를 비롯한 사과재배 농가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을 새긴 문자사과를 생산했지만 수요처를 찾지 못해 모두 ‘비품(非品)사과’로 팔아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문자사과 파문 이후 품질로 승부하자고 반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과농가와 교류를 시작했지요. 처음 일본 이바라키현 사과밭에 가보니 60~79년생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입이 떡 벌어집디다.”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사과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경사과발전협의회장을 맡아 800여 회원들과 함께 ‘일등 문경사과’ 만들기에 앞장섰다.

“사과나무는 관리가 핵심입니다. 아주 오래된 사과나무에서 정말 깊은 맛이 나는 사과를 생산해 내는 것이 제 작은 소망입니다.”

문경=한형수 기자 hsha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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