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의 원형, 맛의 방주를 찾아⒀전북 정읍 먹시감식초

입력 : 2016-10-19 00:00

비타민A·비타민C·탄닌 등 과즙의 모든 영양분 고스란히 지방분해·면역력 향상 등 탁월

희석해 물처럼 마시거나 밥·찌개·나물 등에 넣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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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_맛의 방주를 찾아서
 ‘먹시’는 우리 토양에 적응한 토종 감이다. 전북 일부 지역의 산기슭이나 논두렁·밭두렁에 자생한다. 껍질에 먹물을 뿌린 것 같다 해서 먹시다. 검은점이 깨알같이 박혀 있기도 하고 넓적한 점처럼 퍼져 있기도 하다.

맛은 어떨까? 잘 익은 먹시는 굉장히 달고, 땡감일 때는 떫은맛이 강하다. 감의 떫은맛은 탄닌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먹시는 탄닌 함량이 일반 감에 비해 상당히 많다고 한다. 탄닌은 몸에 들어가면 유해금속을 흡착 배설하는 해독 및 살균·지혈 작용을 한다. 또 장과 위의 점막을 보호하고 설사를 멎게 하며 염증도 없애준다.

먹시는 <대봉>감에 밀려 거의 사라졌는데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크기가 작다. 달걀 정도 크기로 손에 쏙 들어온다. 뭐든지 크고 푸짐한 걸 좋아하는 우리 음식문화에서 아주 불리하다. 둘째는 씨앗이 8개나 된다는 점이다. 크기도 작은데다 씨앗까지 많아 한마디로 먹잘 것이 없는 감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먹시를 잘 익혀 홍시로도 먹고, 깎아서 곶감도 걸고, 삭혀서 식초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까치밥 신세로 전락했다.

이런 먹시를 살려내 쓸모 있게 만들어낸 것이 ‘먹시감식초’다. 전북 정읍의 식품명인 임장옥 금계식품 대표(70)가 먹시감식초를 만들며 먹시를 되살리고 있다. 임 대표는 6만6000㎡(약 2만평)의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먹시를 재배하며 연간 100t의 식초를 담근다.

식초는 1만여년 전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인류 최초의 조미료이자 보존제·의약품이다. 과일이나 곡물에 들어있는 당을 효모가 분해해 알코올(술)을 만들고, 알코올을 초산균이 발효시켜 식초가 된다. 임 대표는 감식초 만드는 과정을 ‘느림의 미학’이라고 표현했다.

10월 중순쯤 단단한 감을 수확해 커다란 통에 넣어 1차 발효를 시킨다. 겨울 지나 이듬해 4월쯤 즙을 짜고 여과를 한다. 이렇게 얻은 감즙을 다시 2차 발효시킨 뒤 숙성한다. 숙성에는 최소한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총 공정이 3년쯤 걸리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농장 주변의 모든 미생물이 감식초 생산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풀이 자라게 두고 농약이나 제초제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잘 익은 식초는 투명한 감색 빛깔을 띠고 3~5%의 산도, 7~9브릭스(Brix)의 당도를 가진다. 감식초 원액을 입안에 조금 떨어뜨려 보니 신맛이 코를 톡 쏘지만 이내 부드럽게 누그러지고 감 향기가 혀에 좍 퍼지면서 홍시를 먹고 났을 때의 달콤한 맛이 뒷맛으로 남았다. 감식초는 희석해 물처럼 마시거나 밥·찌개·나물 등에 넣어 먹으면 된다.

오랜 시간 발효·숙성시킨 먹시감식초에는 과즙의 모든 영양분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비타민A·비타민C·탄닌 등의 함량이 대단히 높다. 또 발효 대사산물인 수많은 종류의 유기산과 좋은 향을 뿜는 향기 성분이 들어 있다. 그래서 먹시감식초는 탁월한 지방분해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면역력을 향상시킨다. 인류가 만든 기능성 식품 중 가장 건강에 좋고 완벽한 식품을 딱 하나만 꼽아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천연 발효식초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시중에 흔한 양조식초는 천연 발효식초와는 다르다. 주정(식용 알코올)을 이용해 속성 발효하고 과즙을 넣어 맛을 낸 것이다. 이 식초는 제조공정이 짧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가격이 싸다.

반면 천연 발효식초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재료가 들어가지만 결과물은 아주 소량이다. 그래서 귀하고 비쌀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 300개나 되던 감식초 생산 공장이 지금은 50개도 채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자극적인 맛보다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소비가 늘어난다면 가공식품 시장에 변화가 올 테고, 가공식품 시장의 변화는 농업 현장으로 파급될 것이다. 소비자들 손에 우리 농업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글·사진=백승우(농부·강원 화천군 간동면 용호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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