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가 만난 사람]‘TV쇼 진품명품’ 진동만 전문감정위원

입력 : 2013-09-30 00:00

친척 골동품가게에서 일 시작
교육 못받고 경험으로 익혀
그림 등 감정품 90%는 가짜
감정한 작품 최고액은 15억
가격과 역사적 가치 비례 안해
“가치있는 문화재 도난 당할까
공개 꺼리는 풍토는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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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당신에게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골동품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던 적은 없는가. 바로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이들이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방영되는 KBS 1TV 의 전문감정위원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가장 낯익은 이를 꼽으라면 단연 진동만 위원일 것이다. 1995년 프로그램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19년째 옛 그림을 전문으로 감정하며 그 의미와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는 진동만 위원을 서울 인사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예전엔 문화재급 골동품들이 농촌에 널려 있었어요. 심하게 표현하면 발길에 채일 정도로 흔했죠. 그런데도 시골 어르신들은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이젠 어르신들이 먼저 알고 뭐가 있다고 알려주기까지 한답니다.”

 진동만 전문감정위원은 이 방영되면서 달라진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옛날엔 대부분 그랬단다. 골동품 수집상들이 시골을 돌아다니며 골동품들을 샀다. 돈을 주거나 아니면 새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을 주고 대신 골동품을 받는 물물교환식이었다. 당시 그 가치를 몰랐던 어르신들이야 이를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프로그램을 통해 골동품들을 접하며 그 가치를 알게 됐기 때문. 그래서 요즘 어르신들은 그때 골동품 판 걸 후회할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호미 자루 하나도 쉽게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로 인해 화살이 그에게로 쏟아졌다. 수집상들로부터 원망을 들었다는 것. 어르신들이 아예 골동품을 팔지를 않거나 사더라도 싸게 사지 못해서였다. 하루에 하나 사기도 어려울 뿐더러 사더라도 타산이 안 맞는다는 불만이었다. 가게를 두고 장사하는 좌상한테서도 욕 얻어먹기는 마찬가지였다. ‘100만원짜리라고 감정받았는데 그 값을 왜 안쳐주느냐’는 원성 탓에 흥정조차 제대로 못한다나 어쩐다나.

 그렇다고 그가 그들의 심정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과거에는 그들과 같은 입장이었다. 1968년 친척의 골동품 가게에서 심부름부터 시작하면서 뛰어든 일이었다.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골동품을 사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사겠는가. 그는 회사나 가정 등을 찾아다녔다. 말하자면 방문판매였다. 고객들이 처음엔 잡상인 취급을 해 그를 만나길 꺼리는 바람에 고생이 심했다. 설령 만난다고 해도 쉽게 판매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고객이 마음을 열고, 당장 거래는 안 돼도 관계가 계속 이어지곤 했다. 그때 그 시절엔 골동품을 사러 다닌 횟수보다 팔러 다닌 횟수가 훨씬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런 원성을 들을 때마다 힘들죠. 그래도 해야 할 일이라 그만두지 못했습니다.”

 왜 포기하지 못할까. 그는 이런 사례를 들었다. 벼슬길에 오른 조상이 임금에게서 받은 교지(임명장)를 갖고 온 후손들을 보면 칭찬해주고 싶었다. 조상의 유품을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한 그 정신이 참 가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별볼일 없는 그림과 글씨가 붙은 병풍이더란다. 그런데 겉의 그림을 뜯어내니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의 그림들이 드러났다. 가세가 기울어 후손이 공부를 제대로 못했고, 그래서 그 그림들을 몰라본 후손들이 김홍도 등의 그림이 낡자 그 위에 다른 그림들을 붙였다는 후문이다. 그처럼 자칫 사라질 뻔했던 문화재가 세상에 나와 빛을 본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보람이었다.

 또한 감정은 그에게 즐거운 일이었다. 대구로 감정출장을 갔을 때 <서씨열녀포죽도(徐氏烈女抱竹圖)>가 나왔다. 달성 서씨 여인이 도씨(都氏) 집안으로 시집갔는데 1년 만에 남편이 죽고 말았다. 부인은 남편이 생전에 심은 대나무를 17년 동안 쓰다듬으며 남편을 그리워했다. 그러자 하얀 대나무 7~8개가 올라왔다는 것. 이를 안 지방관이 세종대왕에게 ‘서씨 부인이 열녀다’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이에 세종대왕이 ‘칭송할 일’이라며 시를 두 수 지어 내려보냈고 나중에 화가가 이 시를 써넣고 그린 그림이 바로 <서씨열녀포죽도>다. 그가 평가한 이 그림의 감정액은 10억원.

 “회화적 가치도 있지만 ‘열녀’라는 교육적 가치가 높았습니다. 서씨 부인의 남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문화재로 손색이 없지 않습니까. 그날 느낀 뿌듯한 기분이 몇달이나 갔을 정도입니다.”

 그럼 그가 감정한 작품 중에 최고액은 얼마일까. 답은 15억원이다. 조선시대 무인인 석천 전일상이 정자에서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 <석천한유도(石泉閒遊圖)>의 감정액이다. 풍속화 속 인물 표현에 초상화 기법을 적용한 그림이었다. 한마디로 희귀한 작품이라는 평이다.

 “아는 사람만 알았지 그동안 공개가 안 된 그림이었죠. 그런데 후손이 ‘세상에 알리고 싶다’ 해서 방송됐어요. 가치 있는 문화재는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도둑이라도 들까 봐 공개를 꺼리는 게 지금 우리의 풍토라 안타깝습니다.”

 따지고 보면 감정액과 역사적 가치가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액이란 해당 그림을 판매할 경우에 매길 만한 가격을 의미하기 때문. 따라서 감정액이 낮아도 영구보존할 가치가 큰 그림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감정을 하다 보면 ‘진짜’보다는 ‘가짜’를 접하는 일이 훨씬 많다고 한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의 90%가 가짜를 들고 온다는 것. 한번은 누가 부친이 모은 김홍도 그림이라며 5점을 들고 자신을 찾아왔더란다. 그런데 다 모방한 그림이었다. 또 어느 날엔 할머니와 아들이 유명 화가인 청전 이상범의 그림이라며 그에게 감정을 부탁했다. 20여년 전 지인에게 100만원을 빌려주고 대신 받은 그림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그러나 진품이 아니라 사진을 인쇄한 그림이었다.

 “귀로 사지 말고 눈으로 사야 합니다. 남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말고 자신이 직접 골라야 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전문가의 자문을 얻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의 이런 노하우는 45년 동안이나 쌓은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사실 당시에는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직종의 그의 선배들은 대학을 나온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다수가 고물 장사를 하다가 골동품을 다루고, 표구를 하다가 화랑을 운영하는 형태였다. 그 역시 감정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다.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을 쌓다가 1973년부터 서울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했다. 하지만 2년 전에 문을 닫았다. 나이가 들어서 힘들고 방송 출연으로 바쁘기도 했기 때문. 요즘은 방송 외에 그를 찾아오는 이들의 그림을 감정해주며 지내고 있다.

 “여러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지만 거의 다 뿌리쳤어요. 하지만 <농민신문>은 저에게 참 친근한 신문이라 인터뷰에 응했답니다. 어린 시절 저도 지게 지고 모를 심는 등 농사를 지었거든요.”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농민신문> 독자들에게 이렇게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저에게 감정 의뢰가 오면 친절히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남은 생에서 가장 뜻깊은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강영식,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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