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운동·조기검진으로 암 예방…음식은 비빔밥·청국장 추천”

입력 : 2017-01-27 00:00

1981년 서울대 의대 교수 되자마자 ‘세포주은행’ 설립 추진…현재 세계 5위 위상
20여년 전 ‘국가암검진사업’ 제안 “국민에게 큰 도움…가장 보람”

2012년엔 ‘국가 담배사업법’ 헌법소원 금연운동·빨리 걷기 캠페인 등 지속 전개

“요즘은 못 먹는 시대 아닌 100세 시대 제발 아프지 마시길…”

 대장암 수술 7000여건, 건강 강연 1130여회. ‘대장암 명의(名醫)’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전국을 누비며 강연을 통해 암예방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금연 운동가. 박재갑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이야기다. 건강에 관해 ‘금연·운동·검진’을 강조하는 그를 서울 종로에 있는 서울대암연구소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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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갑_캐리커쳐
 대장암 명의와 금연 운동가 등으로 유명한 박재갑 교수에 대해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이 있다. 그가 바로 ‘국가암검진사업’의 제안자라는 사실이다. 서울대 암연구소장이었을 때 ‘암정복 10개년 계획’을 짜서 정부에 제안하고 설득한 끝에 1996년 이 사업이 시작됐다. 자신이 한 일 중 보람이 가장 컸던 일, 국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고 자부하는 일이다.

일반인에게 이보다 ‘훨씬 덜’ 알려진 일이 있다. 바로 한국세포주은행을 세운 일이다. 세포주란 사람의 몸에서 떼어 배양해 죽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는 상태로 만든 세포를 뜻한다. 간암과 위암·자궁경부암 등 다양한 종류의 살아 있는 암세포를 키워내 신약 개발을 위한 실험용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세포주은행은 그 세포주를 배양·보관하며 연구자에게 분양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가 서울대 의과대학 전임강사가 됐던 1981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세포주은행이 없었다.

“지도교수님이 과장이 되면서 나를 전임강사로 뽑았어요.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나는 교수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어요. 학생 시절에 연극하고, 축구하고, 산에 다니며 놀기도 많이 놀았거든요. 졸업하면 고향으로 가서 병원을 개업하려는 계획이었고요. 그러니 얼마나 겁이 났겠어요. 교수가 될 수 없다고 여긴 내가 교수가 됐으니….”

그가 교수가 됐을 때 신임교수 워크숍에서 학장이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똘똘하다고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하는데 정년이 되면 무엇 하나 이뤄 놓은 것이 없어 기억에 남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결심했다. ‘우리나라에 없는 세포주를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박재갑 하면 세포주 만든 사람으로 이름을 남겨야겠다.’

그는 세포를 키우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시행착오 끝에 2년가량 지나면서 결국 세포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세포주은행의 위상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다양한 세포주로 비교하자면 미국과 독일·영국·일본에 이어 우리나라 세포주은행이 세계 5위에 이른다. 특히 세계적인 세포주은행들 중에서 자체 개발한 다양한 세포주를 보유한 은행은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쯤에서 그에 대해 ‘잘’ 알려진 일로 넘어가자. 먼저 금연 운동이다. 2000년에 그는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을 맡았다. 이때 그는 자신의 역할을 국민이 암으로 죽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자각했다. 치료는 모든 의료기관이 사활을 걸고 하고 있으니 자신이 할 일은 예방이라고 믿었다. 암의 사망원인 중 우리나라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는 흡연과 감염이었다. 그러나 감염률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면서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남은 원인은 흡연이었다. 특히 흡연은 암 발생 원인의 20%, 사망 원인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했다.

“담배로 인해 1년에 6만명이 죽습니다. 하루에 160명이 죽는 셈이죠. 누가 사람 한명을 죽이면 당장 잡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원장으로서 내가 할 일이 국민이 금연하도록 앞장서는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대장암 전문가인 그가 그때부터 줄기차게 금연 운동에 나선 계기다. 당시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 암센터 의사들은 물론 행정직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에게까지 금연령을 내렸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최소 3개월 이상 담배를 끊어야 합격시켰다. 암센터가 암정책의 핵심에 있어야 하고 그 정책을 모두가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는 금연을 개개인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았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입니다. 악인이 결코 아니에요. 그보다는 담배를 만들어 파는 행위가 문제라는 겁니다.”

그가 국가의 담배 제조·수입·판매를 허용하는 담배사업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2012년 헌법소원을 낸 이유였다.

엄밀히 따지면 ‘만들어 파는 행위가 나쁘다’라는 문제의식은 온전히 그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어느 금연 심포지엄에서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담배소비자단체 회장이 그에게 하소연했다. “박 원장님, 그렇게 담배가 나쁘다면 만들어 팔지 못하게 해야지 만들어 놓고 못 피우게 합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말이 맞습니다. 흡연하는 분들 잘못이 아닙니다. 만들어 팔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금연 운동을 17년째 이어오고 있다.

원래 그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던 일은 또 있다. 그가 2010년 국립중앙의료원장을 맡고 나서였다. 당시 교과서에 따르면 가장 확실한 대장암 예방법은 신체활동, 즉 운동이었다. 운동이 암을 비롯해 심혈관과 뇌혈관 질환, 당뇨 등 국민 5대 사망질환을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이때의 운동이란 매일 30분 이상 빨리 걷기. 그 무렵 ‘운동과 국민 5대 사망질환 예방 심포지엄’에서 만난 운동 방면의 권위자인 한 교수가 그 기준을 제시했다. 빨리 걷기란 약간 숨이 차거나 땀이 날 정도로 걷는 것이었다. 그런데 심포지엄에서 그 교수가 말했다. “원장님, 감격스럽습니다! 제가 운동화 신기 캠페인을 하고 싶었는데 원장님은 벌써 신고 다니시네요.”

사실 그가 일부러 운동화를 신으려고 해서 신은 것은 아니었다. 2~3년 전 눈이 많이 온 날, 출근길에 하도 길이 미끄러워 근처 신발가게에서 트레킹화를 샀다. 그 이후 계속 발이 편한 트레킹화를 신고 다녔는데 마침 그 교수가 이야기를 한 것. ‘바로 이거다!’ 그는 기조실장에게 물었다. “전 직원에게 운동화를 사줄 돈이 있느냐?” “있습니다.” “그럼 전 직원에게 사줘라. 운동화 신고 출근하자.”

그때부터 운동화를 신고 하루에 30분 이상 빨리 걷기 캠페인을 펼쳤다. 그는 그것을 ‘운동화 출근 생활 속 운동’이라 명명했고 줄여서 ‘운출생운’이라 부르기도 했다.

“음식으로는 비빔밥을 추천합니다. 여러가지를 섞으면 나쁜 것이 있어도 다른 것이 중화시키기 때문이지요. 청국장도 몸에 좋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음식이든 ‘너무’는 피하세요. ‘너무’ 짠 음식, ‘너무’ 매운 음식 같은 것 말이죠. 그렇다고 너무 까다롭게 가릴 필요는 없어요. 육류든 무엇이든 골고루 먹는 게 중요합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그의 식습관은 아마 그의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 듯 싶었다. 그가 부친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은 “배곯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라”였다. 당시 부친이 충북 청주에서 양조장을 운영했지만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는 부친에게 ‘성공해라’ ‘출세해라’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부친은 오로지 자식이 밥 굶을까 걱정이었다. 그가 대학시험을 볼 때도 부친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배곯지 않는 직업이 의사다.” 그가 의사의 길로 들어선 이유였다. 부친은 자식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배고프지 않기만을 바랐다.

“내 자식들이 네명인데 아내에게 물어봤어요.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무엇이냐’고요. 나와 똑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몹쓸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었어요. 요즘은 못 먹는 시대가 아니라 100세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자식이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는다면 부모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담배를 끊고, 운동하고, 검진을 하세요. 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합니다.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검진만 빠지지 않고 받으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제발 아프지 마시길 바랍니다.”

강영식 기자, 사진=김덕영 기자 river@nongmin.com



●박재갑 교수는

194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거쳐 1973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79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임용된 뒤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 국립중앙의료원장 겸 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황조근정훈장(2001), 자랑스런 한국인대상(2004), 세계금연지도자상(2005), 대한민국친환경대상(2012)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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