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의 원형, 맛의 방주를 찾아⑽완도 감태지

입력 : 2016-08-31 00:00

청정 갯벌에서만 자라는 감태

굵은 소금·풋고추 넣어 하루 이틀 숙성후 바로 먹어

완도의 특별한 겨울 별미 조혈·해독·항암·항산화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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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백승우
 무더위가 지긋지긋해서 한겨울을 찾아 나섰다. 계절을 앞당길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는 얼마든지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 한겨울 바다는 차갑다. 상상만으로도 손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시리다.

‘감태(가시파래)’는 한겨울 갯벌에 나는 풀, 가늘고 긴 녹조류의 해초다. 매생이보다 두껍고 파래보다 가늘다. 깊은 바다에서 자라는 갈조류 중에도 감태라 불리는 해조류가 있는데, 둘은 전혀 다르다. 그 감태는 미역과 비슷하게 생겼다. 지금 말하려는 감태를 학자들이 부르는 이름은 ‘가시파래’다.

감태는 갯벌이면 아무 데서나 자라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굴껍데기나 아주 작은 나무토막 혹은 돌 조각 같은 것에 뿌리박고 자란다.

이용규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완도지부장(52)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갯벌 중에서도 동쪽 방향을 보고 있는, 가는 돌 조각이 많은 갯벌이 감태가 잘 자라는 곳”이라고 말한다. 남해 푸른 섬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갯벌과 고금도 내동리의 넓고 긴 갯벌이 그에 해당한다.

12월이 되면 이들 지역에서는 갯벌이 녹색으로 뒤덮인다. 마치 머리카락이 나는 것처럼 감태는 가늘고 길게 자라 옆으로 누우며 갯벌을 뒤덮는다. 산에서 자라는 산나물을 꺾기만 하면 되듯이 감태도 갯벌에 들어가 뜯기만 하면 된다. 감태 뜯는 걸 여기서는 ‘감태 맨다’라고 한다.

갯벌에 들어가는 날짜가 있다. 아무 때나 들어가지 않고 부녀회원들이 날을 정해 그날만 들어간다. 허리에 줄을 감아 고무 다라이를 끌고 갯벌 안으로 멀리 들어가 그날 새로 나온 싱싱한 신초만 가려 이물질이 묻지 않게 조심스럽게 맨다.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은 새로 나온 신초와 오래된 줄기를 구분하지 못한다. 또 수확하는 동안 흙이나 티를 잔뜩 묻혀 잡티를 털어내는 시간이 수확하는 시간보다 더 많이 걸린다. 새로 올라온 싱싱한 줄기를 골라 깔끔하게 수확하는 게 기술이다.

수확한 감태가 다라이 위로 봉긋 올라 둥그렇게 보일 정도가 되면 갯벌에서 나오는데, 나오자마자 바로 손질해 그날 밤 안으로 염장을 해야 한다. 감태는 아주 빨리 변질되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고인 물웅덩이에서 빨며 손질하고 집으로 가서 다시 한번 민물로 헹군다. 그런 다음 굵은 소금을 뿌리고 미리 절여놓은 풋고추를 넣어 감태지를 만드는데, 풋고추는 통으로 넣기도 하고 썰어서 넣기도 한다.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가면서 시작한 일은 밤이 깊어서야 끝이 난다.

이렇게 담근 감태지는 하루나 이틀 숙성시켜 바로 먹는다. 파를 넣거나 깨소금을 뿌리기도 한다. 숙성된 감태지를 그릇에 담으면 물이 자작하게 고인다. 한 젓가락 집어 입에 넣으면 쌉싸름하면서 희미하게 단맛이 난다. 여기에 고추의 매운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여름에 먹고 싶으면 냉동실에 얼렸다가 꺼내 먹으면 된다.

3월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줄기가 더 나오지 않으면 묵은 줄기를 수확하는데, 이때 수확한 것은 잘 널어 말린 뒤 장에 무쳐 나물을 해 먹는다.

너른 갯벌에서 매년 저절로 올라와 매기만 하면 되는 감태로 담근 감태지가 왜 맛의 방주에 올랐을까? 궁금해서 물었다. 이 지부장은 “감태지는 완도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겨울철 별미”라고 했다. 완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겨울에 감태지를 먹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조혈·해독·항암·항산화 기능 등이 있어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난 식품이다.

오랫동안 갯벌을 관찰하고 갯벌 사진을 찍어온 완도신문 전 편집국장 박남수씨(50)는 “해양오염과 무분별한 간척사업으로 인한 갯벌 감소 등으로 청정한 갯벌에서만 자라는 감태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감태는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소량밖에 생산되지 않는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풍요로운 갯벌이 더 이상 감태를 키워내지 않는 건, 어쩌면 아프고 병들었으니 이제는 좀 돌봐달라는 갯벌의 간절한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태지는 생산지가 제한적이고 생산량도 많지 않아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말 그대로 겨울철 아주 특별한 별미로 먹어봄 직하다. 간혹 완도에 있는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오기도 한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완도지부 ☎010-3776-1704.

◇사진제공=박남수, 글=백승우(농부·강원 화천군 간동면 용호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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