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청년농부 시대]박농사 짓고 박공예 하는 염하나씨<경기 여주>

입력 : 2016-12-21 00:00 수정 : 2017-08-23 15:05

아버지 따라 귀농 후 처음 접한 박

전공 살려 조명·화분 등 만들어 모양 제각각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

박 속 긁어내는 재미 쏠쏠 “박공예 체험장 운영이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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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겐 박농사로 이루고픈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겁 없이 도전했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냥 서울에서 직장 다니다 시집갔다면 지금처럼 큰 꿈을 꾸지 못했겠죠. 언젠가는 박공예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꿈을 실현하고 싶어요.”

 희망을 말하는 염하나씨(31)의 표정은 밝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박농사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부친 염기용씨(55)의 귀농에서부터 비롯됐다.

 2012년 부친은 시골에서 농사지으러 경기 여주로 귀농했다. 당시는 몸에 좋다고 알려진 삼채가 나온 초창기. 부친은 빈손으로 혼자 삼채농사를 시작했다. 살고 있던 서울에서 왕래하며, 농장 인근 찜질방에서 묵기도 하면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제가 네자매 중 맏이라서 그런지 아빠 농사를 도와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아빠가 자리를 빨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거든요. 결혼하기 전까지만 도우면 되겠다 싶어 2013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했어요.”

 하지만 내내 서울에서 살았고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그녀였다. 재배기술은 물론 농업기술센터가 있는지도 몰랐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작심한 그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여주시농업기술센터의 귀농아카데미교육에다 농촌체험관광교육도 수료했고, 유기농업기능사와 종자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최근에는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박농사도 모르고 시작했다. 이웃이 박 씨앗을 줘서 관상용으로 심었는데 수확시기를 몰랐다. 식용 박은 초여름에 수확하는데 그 시기를 놓쳐버린 것. 그때가 지나면 속이 단단해져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었다. 가을에 따는 단단한 박도 쓸모가 있었다. 바가지를 만들 수 있어서다. 특히 신부집에 함이 들어갈 때 액운을 쫓아내기 위해 깨는 용도로 바가지를 자주 찾았다. 농사도, 그런 풍습도 몰랐던 그녀로서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더구나 대학에서 전시디자인과를 다니며 인테리어와 박람회·박물관 전시 등을 배운 그녀였다. 박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과의 연계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옛날에 바가지는 물을 뜨거나 밥·씨앗 등을 담는 용기로 썼대요. 요즘은 그런 전통적인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각종 공예품으로 만들 수 있고요. 2가지가 가능하니 다른 분야보다 체험으로서의 가능성이 훨씬 밝다고 봐요.”

 그녀는 전공을 살려 직접 박을 소재로 조명이나 화분 등을 만들었다. 특히 박은 모양이 열이면 열, 다 다르기 때문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단다. 그녀가 밤늦도록 추위에 ‘콧물 질질 흘리며’ 박 속을 긁어낼 수 있는 기운도 바로 그런 박의 매력에서 얻는다.

 박이 주작목이지만 수세미를 재배하는 이유도 체험과 관계가 깊다. 달여 먹으면 기관지 계통에 좋다는 수세미는 여름엔 식용으로 쓰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섬유질이 생기는데, 삶아서 말리면 그릇을 닦는 천연수세미가 된단다.

 그렇지만 그녀가 당장 체험시설을 지어 운영에 나서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부친과 그녀 소유의 땅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농사짓는 총 6611㎡(2000평) 규모의 만채농장(cafe.naver.com/yp8282)은 두번째로 빌린 땅. 같은 여주 지역이지만 처음 빌린 땅이 갑자기 팔리는 바람에 급하게 이곳으로 옮겨야 했다.

 “오죽 급했으면 길 가는 사람을 붙들고 ‘땅 빌릴 데 어디 있느냐’고 물어봤을까요. 땅을 새로 빌린 뒤에도 매일 택배를 보내야 해서 한꺼번에 이사를 못했어요. 1t 트럭으로 38번을 왕래해 파이프 등 자재들을 실어 나르며 이사했을 정도니까요. 땅 없는 설움을 그때 절실히 느꼈어요.”

 그녀는 요즘 공방과 전시장을 겸한 커피숍을 운영할까 고민하고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으니 체험장 설치보다는 좀 더 수월하고, 좀 더 빠른 길일 테니.

 박뿐만 아니라 초석잠과 인디언감자(아피오스) 등도 재배하느라 1년 내내 쉴 틈이 별로 없다는 그녀. 매일 몸뻬 입고 일하고, 쭈그려 앉아 일하느라 요새는 무릎이 시린다고 말하면서도 그녀는 농사가 좋고, 시골이 좋단다.

 “밤 9시가 넘으면 컴컴해지는 시골에서의 삶은 평화로워요. 서울 가서 살라면 이제는 못살 정도예요. 특히 박공예와 천연수세미 체험 같은 6차산업에 대한 희망 덕분에 더욱 그렇답니다. 처음엔 결혼 전까지만 돕기로 했는데 지금은 결혼 생각이 별로 없네요. 박의 매력에 푹 빠졌으니까요.”

 여주=강영식 기자, 사진=김덕영 기자 river@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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