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약주에 은은한 향 ‘솔송주’...소나무의 기품·여운 담겨

입력 : 2022-08-03 00:00 수정 : 2022-08-03 14:24

[우리 술 답사기] (39) 경남 함양 ‘솔송주’

정여창 16대 손부 박흥선 명인

40여년간 가양주 대중화 ‘혼신’

찹쌀죽·밀누룩 버무린 밑술에

고두밥·송순·솔잎 섞은 뒤 발효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주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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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 솔송주에서 빚은 증류주 ‘담솔(왼쪽부터)’, 약주 ‘솔송주’와 ‘녹파주’. 이 가운데 ‘솔송주’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함양=김병진 기자

‘좌(左)안동 우(右)함양.’

예로부터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선비마을을 일컫는 말이다.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엔 100년이 넘은 한옥 60채가 모여 있다. 이곳은 조선 성종 때 유학자인 일두 정여창이 태어난 곳이다. 지금은 문중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16대손 정천상씨(76)의 부인이자 농림축산식품부 선정 전통식품명인(27호)인 박흥선 명인(69·경남 무형문화재 35호)이 가양주인 <솔송주(13도)>를 빚고 있다.

박 명인은 20대 때 결혼하고 시어머니에게 술을 배웠다. 박 명인은 처음엔 누룩 냄새를 맡지 못할 정도로 술과 거리가 멀었지만 전통과 가업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술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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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평한옥마을에서 ‘솔송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박흥선 명인.

“시어머니는 술을 잘 드시는 분이었어요. 100세 넘게 사시며 장수하셨죠. 술을 배우면서 끊임없이 마시며 혀끝으로 미세한 맛의 차이를 가늠했어요. 참 술이란 게 하루걸러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40여년간 맛을 찾아갔어요.”

1990년대 박 명인은 가양주를 현대화시켜 <솔송주>로 재탄생시켰다. 원래 이름은 ‘송순주’지만, 이미 같은 이름의 술이 있어 <솔송주>로 정했다. <솔송주>는 찹쌀로 죽을 끓인 후 밀누룩과 버무려 밑술을 만든다. 밑술에 고두밥·송순·솔잎을 섞어 발효·숙성해 거르면 된다. 이때 송순은 소나무에 새로 돋아난 순을 말한다. 4월말부터 5월초에 송순을 따서 찐 다음 넣는데 이래야 소나무의 쓴맛이 사라지고 향만 남게 된다. 최근에는 이를 진액 형태로 만들어 넣고 있다. <솔송주>는 연한 연둣빛이 감도는 살균 약주다. 달짝지근하면서 뒷맛이 깔끔하고 끝에 아주 은은한 솔향기가 난다. 솔향이 나는 음료인 ‘솔의 눈’을 떠올렸다면 생각했던 맛과 다를 수 있다.

“전수자인 딸이 솔향을 더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딱 이만큼이 좋아요. 솔향이 강해지면 그만큼 술에 쓴맛이 올라오거든요. 모름지기 단 한잔을 마시더라도 기분이 좋아야 해요. 또 향이 적어야 음식과도 조화롭게 잘 어울리죠.”

이런 덕일까. <솔송주>는 역대 대통령들이 사랑한 술로도 꼽힌다. 솔송주문화관에 가면 이 술을 마신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들 사진이 걸려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북한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주로 선정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개평한옥마을을 방문해 <솔송주>를 맛봤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국가유공자와 사회적 배려계층에 설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솔송주> 외에도 이를 증류시킨 증류주 <담솔(40도)>, 솔향을 덜어낸 약주인 <녹파주(15도)>도 있다. <담솔>은 증류주로 약간 매운맛이 나고 이와 함께 끝에 솔향이 묻어난다. 증류 후 장기간 저온숙성해서 목넘김이 부드럽다. <녹파주>는 파르스름한 맑은 빛이 나는 약주다. 거울을 보는 것같이 술이 맑아 ‘경면(鏡面) <녹파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래 이는 고려시대에 빚어졌던 술로 명맥이 오래전 끊겼다가 2008년 농촌진흥청 ‘우리술 복원 프로젝트’로 부활해 다시금 빚어지고 있다. 맑고 깔끔한 술이라 흰살 생선회나 나물 같은 담백한 안주와 잘 어울린다.

박 명인은 전통주 부흥을 위해 꾸준히 힘쓰고 있다. 요새 젊은 양조인들이 전통주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술에 젊은 감성이 더해져야 술 시장 전체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 역시도 술병 디자인을 새롭게 하는 등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또 젊은 세대의 기호에 맞춰 알코올 도수를 20도 정도로 한 술도 출시할 계획이다.

“최근 외국에서도 많은 러브콜이 왔어요. <솔송주>로 칵테일을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술이 새로운 모습으로 소비되는 것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전통을 지키는 것과 제자리만 지키는 건 다른 일이에요. <솔송주>를 더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솔송주>는 375㎖ 기준 8000원, <녹파주>는 1만원이다. <담솔>은 2만2000원.

함양=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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