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3대째 과수농사, 며느리가 대이어

입력 : 2022-07-20 00:00

[가족농 열전 백년 농부] ⑫ 포도·블루베리농가 이수정씨

시부모와 16년째 은성관광농원 일궈

지자체 교육과정 섭렵 ‘공부하는 농부’

고객관리 탁월…손해 줄고 매출 증가

치유농업 관심 ‘힐링 프로그램’ 운영도

 

01010101201.20220720.001342042.02.jpg
수확을 앞둔 ‘샤인머스캣’ 포도의 품질을 살피는 이은재(오른쪽부터)·오성숙씨 부부와 며느리 이수정씨. 16년째 함께 농원을 일구면서 부모와 딸보다 더욱 살가운 사이가 됐다. 화성=현진 기자

“아들 둘은 서울에 있는 학교에 보냈어. 농사를 안 시키려고 그랬지. 왜긴 왜야, 힘들잖아. 그 힘든 걸 며느리가 대신 해주니 너무 고맙지.”

경기 화성에서 3대째 과수농사를 짓는 은성관광농원 이은재 대표(68). 그의 곁에서 가업을 일구는 건 며느리 이수정씨(39)다. 가깝고도 먼 구부(舅婦) 사이가 종일 붙어서 일하는데 동네에선 화목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어릴 적 이 대표는 기꺼이 과수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자식만큼은 다르게 키우고 싶었다. 두 아들을 모두 대처로 보내 공부시킨 이유다. 농사일이 얼마나 고된지 알아서다. 고생을 하고도 갈수록 농산물값이 떨어져 걱정만 느니 아이들은 평범한 직장인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도시생활도 만만치 않았던지 2007년 큰아들네가 귀향했다. 10년간 농사를 돕다가 다시 직장을 잡아 나갔고, 그사이 흔들림 없이 농장을 지킨 건 맏며느리 이씨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씨는 결혼하기 전까지 농사의 ‘농’ 자도 몰랐다. 가지치기(전정) 하는 방법이며 열매를 수확하는 법은 전부 시댁 어른들 어깨너머로 배웠다. 남편도 없이 혼자서 버티기가 어렵진 않았을까.

“잘 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시부모님께서 잔소리를 안하세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씀이 없어요. 묵묵히 일하시면 제가 여쭤보고 따라 하는 거예요.”

시어머니인 오성숙씨(65)도 서울 태생이다. 시집와 농사짓는 것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니 엄하게 가르치기보단 ‘잘한다’ 칭찬하며 지켜봐줬다. 실수해도 혼내긴커녕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감싸줬다.

아무리 잘해줘도 마냥 좋을 수 없는 것이 시집살이다. 기술은 부족했고 갈수록 체력이 달렸다. 농사를 시작한 지 5년쯤 지나자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 시기를 이겨낸 것 역시 시부모님 덕분이었다.

이 대표는 지역에서 유명한 ‘공부하는 농부’다. 시·도에서 제공하는 교육과정은 죄 섭렵했다. 대학원도 세곳이나 다녔다. 그 결과 포도 마이스터가 됐다. 시어머니인 오씨도 마찬가지로 배움 욕구가 크다. ‘농부도 배워야 살아남는다’는 게 이 부부의 철학이다. 청년농 교육 정보를 찾아다 이씨에게 알렸고 농사며 육아를 대신 해줄 테니 밖으로 나가 배우고 사람을 만나라며 등을 떠밀었다.

“교육받으러 다니니까 숨통이 트였어요. 농장에서 혼자 일하면 외롭거든요. 몸까지 힘드니까 나중에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런데 교육받는 날엔 일을 안하잖아요. 또 가서 또래를 만나니까 스트레스도 풀리고요.”

이씨가 농사를 지은 지 올해로 16년째다. 이제는 지역에서도 실력 좋은 청년여성농으로 인정받는다. 포도와 더불어 블루베리도 재배하는데 오씨는 “블루베리는 며느리가 전담한다”며 “나는 솔직히 따는 법도 잘 모른다”며 며느리 칭찬을 늘어놨다.

무엇보다 이씨 실력이 돋보이는 건 고객 관리다. 은성관광농원은 출하한 농산물 전량을 직거래한다. 수익은 좋지만 손님을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상품이 망가졌다면서 여러차례 다시 보내달라거나 다 먹고서 맛이 없다며 환불해달라는 민원도 있다. 방법이 없어 한동안 손해를 보고 마음고생을 했는데 이씨가 묘안을 냈다. 고객 목록을 작성한 것이다. 반복해 트집 잡는 고객을 기록해두고 주문을 받지 않았다. 반면 단골에게는 틈틈이 우수농산물을 보내며 신뢰를 높이는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야무진 고객 관리 덕분에 손해는 덜고 매출은 죽 올랐다. 이 대표는 “며늘애가 똑소리 난다”면서 “이제는 농사며 판매며 더는 가르칠 게 없을 만큼 잘한다”고 흐뭇해했다.

이씨에겐 직함이 하나 더 있다. ‘화성마을여행사’ 대표다. 그를 주축으로 치유농업에 관심 있는 농민 여섯명이 모여 회사를 차렸다. 요양원·보건소 고객을 대상으로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금은 찾아가는 형식이지만 언젠가 농장 안에 건물을 짓고 ‘은성관광치유농원’을 꾸리는 것이 목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부모님을 보고 깨닫는 게 많아요. 치유농업도 그 가운데 하나예요. 농업이 발전하고 변해야 하거든요. 앞으로 저희 농장이 건강한 먹거리 생산과 함께 작물 체험은 물론 심신 치유를 가져다줄 수 있는 멋진 장소가 되길 기대합니다.”

이씨는 세 아이도 자신의 뒤를 이어 농부가 되길 바란다. 고향에서 가족이 함께 땅을 일구고 미래를 그리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묵묵하게 농장을 지켜나갈 생각이다.

화성=지유리 기자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