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인생은 여행

입력 : 2022-07-20 00:00 수정 : 2022-07-20 13:33

병세 악화된 지인의 아내

남편의 지극한 보살핌 속

전세계 다니며 건강 회복

여행엔 때늦음이란 없어

연세 많으셨던 어머님과 

함께 가지 못해 후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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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여행길에서’라는 시가 있다. 첫 소절은 ‘우리의 삶은 늘 찾으면서 떠나고 찾으면서 끝나지’라며 시작한다. 쉽고 간결하지만 울림이 있어서 가슴에 와닿는다.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님’을 뜻한다. 문득 인생을 되돌아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의 작품 제목이다. 이에 답하기는 쉽지 않지만 인생이란 여행에 비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과거 여행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5분 거리면 갈 수 있었고 교실에서 공부하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공부가 끝나면 다시 5분 거리의 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내 어릴 적 일상 속 동선의 전부다.

외국에 나가본 것은 1970년대 중반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학회가 처음이다. 그때만 해도 한반도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절차도 복잡하고 확실한 이유가 아니면 여권도 잘 나오지 않았다. 여행을 목적으로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외화가 유출되는 것이니 가난한 나라에서 여권 발급에 박할 수밖에.

여행하면 생각나는 몇사람이 있다. 철학자 칸트(Kant, 1724∼1804년)는 자기 집과 동네 골목길을 하루에 여덟번 정도 산책한 것 말고는 달리 먼곳으로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많은 후학은 그를 우주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발한 여행을 한 모험가라고 주장한다. 꼭 발로 걸어야만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영상으로 단숨에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 다녀올 수도 있고,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었다면 그의 태생지인 체코로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겠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의 아내가 루푸스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고 병세가 악화됐는데 이분의 소망은 죽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을 두루 여행하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잘 나갔지만 그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아내와 새로운 여정에 동행하기로 했다.

여행의 행태가 그리 평범하진 않았다. 험지만 찾아다니는 그런 탐험 같은 여행이다. 두달가량 여행을 마친 부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환자인 아내는 건강한 모습이고 함께 갔던 남편은 오히려 환자처럼 보였다. 이들은 틈만 나면 한국을 떠났으니 세계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는 등 고비가 있어 주치의는 오지 여행이 환자에게 무리라고 말렸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필자 역시 의사로서 그들의 계획을 권고하지는 않았으나 다녀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환자 본인의 간절한 소망과 순애보 같은 남편의 내조가 치유의 핵심이 된 게 아닌가 말이다.

필자만의 일화도 있다. 1982년 시작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매년 네팔을 찾았다. 처음엔 등산이 목적이었지만 어려운 세계 이웃을 돕는다는 일념으로 그 여행은 의료봉사활동으로 성격이 점차 바뀌었다. 의사를 그만둔 후에는 의료봉사를 넘어 한국과 네팔간 문화 교류에도 힘썼다.

네팔을 오가며 불교의 성지 룸비니도 여러번 찾았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렸다. 독실한 불교신자라 이곳에서 부처의 발자취를 따라 참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한데 실행이 쉽지 않았다. 연세가 많으셨고 건강도 여의치 않아서다. 여행을 가시라 적극적으로 권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건대 후회가 밀려온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난 지인처럼 성심성의껏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여행을 했더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을까. 인생도 여행도 늦은 때란 없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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