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저녁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입력 : 2022-07-15 00:00


‘철원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박준 시인의 시 <메밀국수>입니다. 시가 길어 마음대로 짧게 줄여봤는데 이것으로 깊숙이 전달되겠다 싶어 몇 군데 중략 표시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시인께는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정중히 소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인이 강원 철원에서 혼자 작업을 하면서 지냈을 며칠 동안의 풍경이 그려집니다. 가방 하나 메고 찾아간 낯선 그곳에다 스스로를 감금했을까요? 도시를 살짝 비켜나 있는 곳이라면 가슴을 부풀려 담고 담아야 할 것이 많았을 겁니다. 저녁으로 메밀국수를 골랐군요. 막 얼굴을 익힌 사람들이 일일이 저녁을 먹었느냐 물어오는 건 혼자 지내는 시인에게 괜찮은지를 물어오는 방식이기도 할 겁니다.

저녁이 지나가는 사이 메밀국수로 허기를 달래는 동안 낯선 곳에 누가 들른다는 소식이 있었다면 조금은 많이 들떴을 겁니다. 나를 보러 와주는 사람은 나에게 물 주러 오는 사람일 테죠. 국수도 좋을 테고 시원한 음식도 좋을 테죠. 음식이 나왔다면 생각난 듯이 술 한병을 시켜야죠. 그리고 조금 가까이 앉는다면 밤 깊어가는 소리에 얹힌 밤새 소리가 가슴을 살살 간지럽히겠지요.

누구를 기다리는 마음에도 색깔이 있는데 쌀과 국수의 중간쯤 되는 그 색의 상태가 시(詩)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그 텅 빈 시의 공간 안에 성큼 걸어 들어와주는 것도 좋겠지만 아주 오랜 기다림을 익히고 익혀 시인은 이런 시를 쓴답니다. 당신도 조금은 비워두세요. 누군가로 늘 꽉 차지 않게 내 자리와 내 시간을 조금만 헐렁하게 놔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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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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