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철학박사 대신 귀농 선택…주체적인 농부 인생 흡족”

입력 : 2022-07-06 00:00 수정 : 2022-07-11 11:09

[가족농 열전 백년 농부] (11) 유기농 배농가 김후주씨

3년 배우면 과수원 물려준다는 말에

아버지에게 모든 영농기술 전수받아

홀로서기 성공…온라인 쇼핑몰 개설

봄철엔 도시민 일꾼 모집…숙식 제공

또래와 만나 이야기하며 기분전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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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유학도 마다하고 철학박사 대신 대를 이어 농사꾼이 된 김후주 대표. 책 읽는 것보다 배 따는 일이 더 익숙해졌다는 김 대표가 배 봉지 씌우는 작업에 한창이다. 아산=현진 기자

“요즘 같은 취업난에 대학원을 다니느니 아버지 말씀대로 농사짓는 편이 낫겠어. 열심히 하면 그만큼 수확량이 늘고 돈도 더 벌 수 있을 테니까.”

철학박사가 돼 대학교 강당에 서는 꿈을 포기하고 농사꾼이 된 충남 아산의 주원농원 김후주 대표(34). 2016년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유학을 준비하던 때였다. 유기농 배를 재배하던 아버지 김경석씨(64)가 자신의 뒤를 이어 과수원을 운영해보라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고민했다. 공부가 재밌었고 심지어 장학금을 받을 만큼 잘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철학’으로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양손에 유학과 농사를 올려두고 계산기를 두드렸더니 답이 나왔다.

“그래, 농사꾼이 되자!”

김 대표는 모든 영농기술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아버지 김씨는 국내 1호로 유기농 배 인증을 받았다. 독일·일본 등지를 오가며 기술을 익혔고 미국에서도 먼저 유기농을 인정받았을 만큼 이 분야에선 전문가다. 당연히 아버지 가르침이 곧 법이요 명령이었다. 걸음마를 배우는 자세로 하나부터 열까지 아버지 말씀을 따랐다. 다행히 농사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과수원을 놀이터 삼아 놀며 일하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술술 기술을 익혔다. 문제는 생활방식이었다. 늦게 일어나고 컴퓨터 하느라 밤새는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진 못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어요. 느긋이 해도 될 것 같은데 왜 그러시는지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또 잔소리는 어찌나 심하신지. 못 견디고 집을 나간 적도 있다니까요.”

맞지 않던 옷은 점점 몸에 맞게 늘어났다. 그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가 못 박은 ‘3년’이란 시간 덕분이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아버지가 딱 3년만 배우라고 하셨어요. 그러곤 과수원을 제게 물려주시겠다고요. 힘들어서 관두고 싶을 땐 ‘조금만 참으면 이게 다 내 거다’ 생각하며 버텼어요.”

아버지는 약속을 지켰다. 3년 뒤 주원농원 대표 자리를 딸에게 넘겼고 자신은 강원 양구로 터를 옮겼다. 그곳에서 유기농 사과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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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가공식품 인증을 받은 주원농원의 유기 배즙.

현재 김 대표는 혼자 힘으로 5만여㎡(1만5000평) 배밭을 돌본다. 수확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그사이 판로도 개척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해 직거래 판매량을 늘렸다. 유기농 배는 크기가 작고 표면에 흠집이 있어 도매거래가 어렵다. 대신 그는 마케팅을 잘하면 직거래에서 먹힐 거라고 판단했고 적중했다. 지난해에는 아버지가 수확한 사과를 김 대표가 온라인에서 팔기도 했다. 이제 막 수확을 시작해 물량이 적어 판로를 미처 찾지 못한 아버지 사정을 듣고 도움을 준 것이다. 홀로서기 3년 만에 어엿한 농사꾼이 돼 오히려 아버지를 돕는 위치가 된 셈이다.

김 대표가 경영을 맡고 생긴 변화는 또 있다. 봄이 되면 주원농원에선 도시민을 일꾼으로 모집한다. 이들은 이곳에서 숙식하며 수분이나 열매솎기(적과) 작업을 돕는다. 하루 6시간씩 일하고 일당도 받는다. 기술자가 아니라 농장 입장에선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꾼이지만 즐겁게 일하는 이들을 보면 김 대표도 만족스럽다. 아버지는 생각조차 안했을 시도다.

“도시민에게 농촌의 실제 모습을 알려주는 것이 청년농민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요. 체험농장을 운영하기엔 일손이 모자라고 대신 일꾼을 모집해 농촌생활을 경험하게 해주는 거죠. 고된 작업을 해야 하지만 오히려 오는 사람들은 아주 좋아해요. 일정이 끝나고도 며칠 더 머물러 일을 하겠다는 이들도 있고요.”

이는 그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시골에 박혀 외로워질 때가 있는데 또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좋지 않은 감정이 훌훌 날아가버린다. 게다가 ‘농사일하는 모습이 멋지고 부럽다’는 말을 들으면 자존감도 채워진다.

김 대표는 해가 가면 갈수록 농사짓기를 잘했다 싶다. 먹거리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좋은 농산물을 찾는 소비자가 는다. 농민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무엇보다 주체적이고 여유로운 농촌의 삶이 흡족하다. 도시에서 살았다면 결코 누릴 수 없는 일상이다.

“제게 농사꾼이 되길 권하신 아버지의 혜안이 감탄스러워요. 덕분에 새로운 꿈을 찾았으니까요. 이젠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어요. 아버지에게 도움 받는 딸이 아닌 도움 주는 농사꾼이 되는 꿈이요. 벌써 홍보·마케팅 부문에선 이룬 것 같기도 해요. 몇년 더 버티다보면 영농기술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산=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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