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쌀산업] 쌀 구곡 소진 사실상 불가능…산지농협, 가을이 두렵다

입력 : 2022-06-27 00:00 수정 : 2022-07-13 17:17

햅쌀 수확 두달 앞으로...벼랑끝 쌀산업 ③·끝  산지 매입 여력 바닥

적체 해소 못해…창고도 부족

올해산 쌀 사들이기 힘들수도

정부, 물가안정 빌미 나몰라라

농민 큰 손실…책임 양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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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한 농협 로컬푸드직매장 물류창고에 벼 톤백이 천장까지 꽉 들어차 있다. 농협은 벼 건조저장시설(DSC) 사일로와 양곡창고를 다 채우고도 벼가 남아 직매장 물류창고에까지 벼를 쌓아두고 있다.

산더미 쌀 재고 적체와 계속된 쌀값 하락 사태는 올가을 수확기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과 벼 건조저장시설(DSC)의 재고 소진이 지체될수록 산지 매입 여력은 급속히 약화돼 수확기 대혼란이 벌어지고 농가경제는 휘청이게 될 것이란 우려다. 혼돈의 쌀시장에 이미 균열이 시작됐다는 위기감이 산지를 뒤덮고 있다. 시장안정화 조치를 더는 미뤄선 안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쌀 매입 여력 ‘뚝’=충남 만세보령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은 6월 중순 기준 쌀 재고가 1만4700t에 달한다. 쌀 적체를 해소하면서 손실폭도 최소화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지금 추세라면 2021년산 쌀 재고 소진은 10월 중순께나 가능하다. 더욱이 올해는 추석마저 빨라 자칫하면 벼 매입가격의 높고 낮음은 둘째 치고 벼를 쌓을 창고가 부족해 매입에 큰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문창환 만세보령농협쌀조공법인 대표는 “극도로 위축된 산지의 불안심리가 회복되지 않으면 올가을 농민들은 예년보다 수확기를 앞당기고 물량도 더 많이 농협에 낼 것으로 예상되는데 농협 RPC와 DSC는 매입 여력이 뚝 떨어진 상태라 수확기 벼 매입을 두고 일대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전국 어느 곳도 예외가 아니다. 경북 구미시농협쌀조공법인 역시 1만800t에 달하는 적체물량 때문에 올가을 쌀 매입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김영찬 구미 고아농협 조합장은 “쌀 적체물량 해소에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햅쌀 수확기까지 재고 소진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창고가 부족하다고 매입을 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야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하루하루 속이 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산지는 이미 수확기 쌀 대란에 대비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정원 전남 해남 화원농협 조합장은 “이사·대의원·영농회장 등 내부 조직장 긴급회의를 열어 시장 상황을 설명하고 올해 쌀 매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전하며 비상 대응에 나선 상태”라고 밝혔다.

◆들끓는 산지 여론=시장 상황이 급속히 악화하면서 산지의 싸늘한 시선이 정부로 향하고 있다. 김도연 경북 상주농협 조합장은 “정부가 쌀 시장격리만 제대로 했다면 이렇게까지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며 “잘못된 대응 때문에 RPC와 DSC가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됐고 결국 엄청난 손실이 농민에게 돌아가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후 전남 고흥 팔영농협 조합장도 “지난해 10월부터 산지에서는 올해 쌀 문제가 벌어질 것으로 보고 정부가 신속한 시장격리에 나서야 한다고 했는데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뒤늦게 1·2차 시장격리를 하고도 쌀값 하락을 막지 못한 것”이라며 “정부가 초래한 일인 만큼 지금 상황도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빌미로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로 수수방관하면서 사태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김용구 부산·울산·경남농협RPC운영협의회장(의령농협 조합장)은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쌀값이 떨어지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며 “쌀은 식량안보와 직결된 문제로 쌀값 하락세가 지속되면 쌀산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물가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이재우 경북 문경 점촌농협 조합장은 “모든 물가가 폭등하는데 쌀값만 곤두박질치는 상황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밥 한공기 200∼300원에 불과한 쌀값을 두고 물가안정을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농현장 분위기도 심상찮다. 전남 고흥 쌀농가 배재호씨(58)는 “이러다 정말 농협이 벼 매입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가 코로나19 재난 지원 때도 농민을 홀대하더니 이젠 쌀 문제마저 나 몰라라 하니 분통이 터진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원동학 경기 여주시농업인단체협의회장은 “농협 RPC마다 재고물량이 넘쳐나는 걸 지켜보는 농민들 심정도 조마조마하다”며 “정부는 늘 쌀산업이 식량안보와 직결돼 있다고 말하면서 이럴 땐 왜 등한시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병완 전남 보성농협 조합장은 “정부가 양곡관리법으로 쌀을 관리하는 것은 농민만을 위한 게 아니라 식량안보, 곧 전 국민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며 “당장은 쌀이 남아돌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농민들이 쌀농사를 포기하고 흉년이라도 들면 그땐 정말 해결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 책임 다해야”=산지에선 정부에 책임 있는 조치를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있다. 최진열 강원 철원농협 조합장은 “3차 시장격리를 하루라도 빨리 시행해 시장불안을 떨쳐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호 경기 여주 능서농협 조합장은 “쌀 시장격리를 계속 늦추다 햅쌀이 나오면 구곡은 팔리지도 않고, 햅쌀 가격마저 영향을 받아 결국 농민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정부 주도의 보다 책임 있는 양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김영우 충북농협RPC운영협의회장(오창농협 조합장)은 “쌀은 국가 식량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인데 모든 비용과 책임을 농협에 떠넘기면 올해 같은 문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며 “양정을 다시 국가 주도로 되돌려야 한다”고 밝혔다. 최진오 전북 동김제농협 조합장은 “식량안보의 핵심인 쌀이 과연 농협만의 문제인가”라며 “정부가 책임을 미뤄 농협이 전부 떠안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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