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쌀산업] 농협마다 손실 눈덩이…“이대로 가면 산지유통기반 붕괴”

입력 : 2022-06-24 00:00

햅쌀 수확 두달 앞으로...벼랑끝 쌀산업 ② 팔면 팔수록 손해

20㎏ 쌀값 4만원 중반대 추락 매입원가 이하 할인판매 감행

위기감 커 출혈경쟁 격화 조짐

유통업체 가격 후려치기 ‘갑질’ RPC·DSC 적자 수십억 달해

소규모 농협 자본잠식 가능성 조공법인 존립자체도 ‘비상등’

“정부, 시장안정화 대책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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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미곡종합처리장(RPC)과 벼 건조저장시설(DSC)들은 물량적체 해소를 위해 쌀 판매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팔면 팔수록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하루하루 피가 마릅니다.” 전국의 미곡종합처리장(RPC)과 벼 건조저장시설(DSC)들이 쌀 재고적체 대란으로 비상이 걸렸다. 산지에선 어떻게든 산더미 재고를 줄이기 위해 손실을 감내하며 매입원가 이하로 할인판매까지 감행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손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헤어나기 힘든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위기감은 갈수록 증폭돼 출혈경쟁이 격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투매현상이 확산돼 산지유통기반이 붕괴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뚝 떨어진 산지 쌀값=물량적체 문제가 갈수록 심화해 이미 쌀값은 RPC와 DSC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 한포대에 4만5534원으로 지난해 10월초 5만6800원에 견줘 1만원 넘게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대형 유통업체와 도매상들이 쌀 수급불균형에 따른 매수자 우위 상황을 바탕으로 산지를 압박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실제 거래가는 더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경남의 한 농협 RPC 관계자는 “최근 롯데마트와 이마트에서 쌀 20㎏ 한포대당 지난해 수확기 매입한 원가보다 무려 1만5000원이나 낮게 납품해줄 것을 요구해왔다”며 “더구나 최근 저가미 유통이 확산되자 중소유통업체와 단체급식 업소들마저 가격 후려치기에 뛰어들어 적체물량 처리가 시급한 RPC와 DSC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고 토로했다.

보통 다른 지역에 비해 쌀값이 상대적으로 높게 거래되는 경기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경구 경기 수라청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장장은 “현재 쌀 재고가 평년 대비 3000t이나 많아 지난가을 매입가보다 가격을 많이 낮춰 판매하고 있지만 전국 RPC들 모두 같은 상황이라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그나마 고정거래처가 있는 RPC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가공시설이 없고 고정거래처도 드문 DSC들은 진퇴양난 공황상태다. DSC를 운영하는 전북 동군산농협 김원중 상무는 “5월말 기준 벼 재고가 40㎏들이 13만6050포대(5442t)에 달하는데 현재 시세로만 따져도 한포대당 1만원에 이르는 손실을 대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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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병 경북 경주 안강농협 조합장(왼쪽)과 김재철 경주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가 미곡종합처리장(RPC)을 둘러보고 있다. 경주시농협쌀조공법인의 RPC 가동률은 지난해 절반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출혈경쟁 가속화 우려=쌀 물량적체 파장은 갈수록 심화할 전망이다. 그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김석 충북 음성군농협쌀조공법인 장장은 “여전히 쌀 3000t이 창고에 가득 쌓여 있어 재고 소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원가보다 1만원 낮춰 팔고 있지만 전국 대다수 농협이 재고 감축을 위해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상황이라 만일 어느 한곳이 값을 더 낮추면 연쇄적으로 따라가게 돼 값은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앞으로 갈수록 출혈경쟁이 더 심각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욱이 시기적으로도 쌀 판매여건이 산지에 불리한 상황이라 출혈경쟁이 격화되고 이로 인해 쌀값은 더 하락해 RPC와 DSC 모두 벼랑끝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박승석 충남 당진해나루쌀조공법인 대표는 “햅쌀 수확기까지 두달이라고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돼 밥 대신 냉면과 콩국수 등 면 소비가 급격히 늘어날 시기고 더구나 각급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 쌀 소비는 더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앞으로 산지 쌀 판매가 더 어려워져 적체물량 압박이 심해지면 출혈경쟁은 한층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RPC·DSC 손실 눈덩이=다가오는 햅쌀 수확기 매입 대란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은 산지 농협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할인판매를 기본으로 산지마다 가용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자구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오호태 경북 남포항농협 조합장(대구·경북 농협RPC운영협의회장)은 “궁여지책으로 직원들에게 목표까지 할당해 쌀 판매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햅쌀을 매입하려면 곳간을 비워야 하니 손실을 보더라도 팔려고 하지만 값이 계속 떨어져 산지 노력만으론 시장안정이 요원하다”고 밝혔다.

더욱이 팔면 팔수록 손실이 더 커지는 모순된 상황에 처한 RPC와 DSC들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자본잠식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김현순 경기 안성마춤농협조공법인 RPC 본부장은 “현재 재고량이 평년 대비 3000t 많은 8000t 정도로, 올해 적자가 50억원에 달할 전망”이라며 “개인 회사로 치면 부도 상황이나 다름없는 최악의 위기”라고 했다. 강선중 전남 영광군농협쌀조공법인 대표는 “현재 재고가 1만2000t가량 있는데 이대로라면 손실이 5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재철 경북 경주시농협쌀조공법인 대표는 “예상 적자규모가 60억원에 달한다”며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수준이지만 재고를 쌓아두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배영수 전남 영암군농협쌀조공법인 대표는 “올해 햅쌀 매입 여력 확보와 쌀 변질 사고 예방을 위해 일단 판매를 서둘러 재고를 5000t 아래로 줄였지만 손실이 3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며 “손실 규모가 너무 커 올해 직원들 성과급 지급도 보류한 상태”라고 털어놨다.

◆산지기반 붕괴 위기감 팽배=RPC와 DSC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누적 손실만으로도 감당이 안되는 상황에서 출혈경쟁이 한층 더 심화된다면 산지유통기반이 붕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문창환 충남 만세보령농협쌀조공법인 대표는 “현재 재고가 전년 대비 6100t 많은 1만4700t으로 재고부담 압박이 크지만 더 큰 문제는 끝 모르고 떨어지는 가격”이라며 “팔면 팔수록 손실만 커지고 예상 적자가 35억원에 달하는 실정이라 경영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창운 경기 서화성농협 조합장은 “전국 농촌지역의 소규모 농협은 지금까지 발생한 손실만으로도 경영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덕일 충북 보은농협 조합장은 “지금 당장의 손실도 경영에 위협이 되고 있지만 앞으로 햅쌀까지 나오면 지난해 쌀은 팔 수가 없어 그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영환 경기 이천 장호원농협 조합장은 “조공법인에서 올해 30억원 적자가 예상된다”며 “RPC사업에 참여한 3개 농협이 각각 10억원씩 떠안게 되면 자본잠식에 빠져 조합 경영마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 나아가 올해 쌀 물량적체 파장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승운 전북 김제 금만농협 조합장은 “시장안정화 조치가 지체될수록 투매현상이 심화되고 쌀값도 올라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문제가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덕병 농협RPC전국협의회 부회장(경북 경주 안강농협 조합장)은 “올해 역대 최대 적자에 조공법인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라 앞으로 조공법인을 탈퇴하려는 농협이 나오고 자본잠식 사례도 잇따를 것으로 우려된다”며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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