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09) 언년이

입력 : 2022-06-24 00:00

가난한 집 맏딸 열여섯 나이에

천석꾼 하녀로 들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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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 넘기기는 밤중에 호랑이 고개 넘기보다 무섭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맏딸 언년이는 열여섯이지만 당찼다. 소작농 아버지가 열한식구 먹여 살린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낮에는 밭매고 밤이면 꾸벅꾸벅 졸면서 삯바느질을 해도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가 벅차 언년이는 제 한입을 덜기로 했다. 연년생 여동생이 어린 동생들을 돌봐줄 수 있을 때가 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침 대처에 사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하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더니 언년이가 어릴 때부터 똑순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라 두말없이 데려가기로 했다. 보따리 하나 옆구리에 끼고 아주머니 따라 남의집살러 가는 언년이 곁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갯마루까지 따라온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하며 “때가 되면 좋은 신랑 구해서 시집보낼 테니까” 라고 이웃집 아주머니가 언년이 어머니를 위로했다.

고개 넘고 물 건너 사십리를 걸어 목적지에 다다라 대궐 같은 집에 들어갔다. 언년이가 ‘아지매’라고 부르니 모두가 놀랐다. 그 뒤로 언년이는 아주머니를 안방마님이라 불렀다. 아주머니네는 서른여섯칸 기와집에 천석꾼 부잣집이라 하인이 여덟이요 찬모와 침모 등 하녀가 다섯이었다.

언년이는 안방마님의 수발몸종이 돼 온갖 심부름을 했다. 안방마님이 없을 때면 사랑방에 불려 가 류 참사 다리를 주물렀다. 안마하는 거야 힘든 일도 아니었지만 뒤룩뒤룩 살찐 류 참사 손이 문제였다. 언년이 엉덩이를 제 볼같이 예사로 어루만지다 이제는 치마 밑으로도 쑥쑥 손이 들어와 언년이가 질색했다.

언년이 또래인 딸들도 보통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다. 밤중에 십리나 떨어진 엿집에 가서 깨엿을 사오라느니 대야에 물을 떠 와 발을 씻겨달라느니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는데 개차반 아들이 건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툭하면 언년이 방으로 기어들어와 언년이가 칼을 빼 들고 난리를 쳤다. 언년이 편을 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안방마님은 언년이가 꼬리를 친다고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어느 날 밤, 또 개차반 아들이 언년이 방에 들어오자 칼을 휘둘러 그 녀석 팔에 자상을 입혔다. 언년이는 보따리를 들고 그 집을 나왔다. 별을 보며 둑길을 걸어 나루터까지 왔다. 강둑에 쪼그려 앉아 한참 울다가 눈물을 닦고 나루터 주막으로 들어갔다.

객방에서 코 고는 소리만 요란한데 초립동 한 사람만이 평상에서 개다리소반 앞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언년이는 기웃거리다가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주막 초롱이 바람에 흔들리는 적막강산에 소쩍새 소리만 처량한데 평상 위의 초립동은 술잔을 비우며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언년이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과객의 울음소리가 쇤네의 가슴을 찢어놨습니다.”

초롱불에 비친 초립동은 옥골이었다. 초립동은 꿈자리가 이상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갔더니 숨이 목까지 차오른 홀어머니가 초립동 손을 잡고 “며느리도 못 보고 이렇게 가는구나” 한 것이 유언이 됐다며 또다시 흐느꼈다.

언년이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어머님은 아직도 저승에 가시지 않았습니다. 49일이 지나야 이승을 떠나십니다.”

초립동과 언년이는 그의 객방으로 들어갔다. 개다리소반에 냉수 한그릇 떠놓고 둘이서 맞절을 했다. 두 사람은 합환주를 마시며 첫날밤 의례를 치렀지만 살을 섞지는 않았다. 이튿날 초립동과 언년이는 새벽 안개 자욱한 나루터에서 첫 배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15년 세월이 흘렀다. 종로 포목점 골목으로 마차 한대가 들어왔다. 마부가 문을 열자 우아한 중년 여인이 내려서 포목점으로 들어가려는데 잡상인이 몰려왔다.

“마님 얼갈이배추 한단만 사주이소.”

못 본 체 포목점으로 들어가던 귀부인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배추장수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곤 얼어붙어버렸다.

“안방마님” 하고 귀부인이 부르자 “언년이” 하며 배추장수 할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지난 15년, 언년이는 초립동과 부부가 됐고 함께 나선 장사가 불같이 일어나 부자가 됐다. 참사 어른은 첩을 셋이나 들이고 개차반 아들은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 야반도주해 한양으로 올라와 청계천변에 웅크리고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년 열두달이 보릿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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