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07) 가랑이 무사

입력 : 2022-06-10 00:00

밥 빌어먹던 한심한 젊은이

훗날 대장군 한신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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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읍, 강소성 회음현에 좀 모자란 젊은이가 있었다. 키가 크고 이목구비도 멀쩡했지만 뭔가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어 언제나 궁한 티가 뚝뚝 흘렀다. 아침이면 어설픈 친구 사이인 정장네 집에 “에헴, 에헴” 헛기침을 하고 들어가 염치 불고하고 그네 식구들 아침상에 끼어들었다. 아침 한끼를 정장네서 때우고는 저잣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정장네 밉상 거머리가 된 그를 떼어내기로 작정한 이는 정장 마누라였다.

어느 날 아침, 두어 식경이나 일찍 식구들이 식사를 마치고 안주인이 설거지까지 끝낸 시간에 “에헴, 에헴” 염소 울음소리를 내며 정장 집에 들어온 젊은이는 텅 빈 상을 보고 친구에게 욕을 퍼붓고는 두번 다시 아침을 얻어먹으러 오지 않았다. 끼니를 밥 먹듯이 굶어 눈은 퀭하니 들어가고 배 속에선 시도 때도 없이 꼬르륵거렸다. 젊은이는 강가로 나가 낚싯대를 던졌지만 고기도 못 잡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에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도 항상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병서(兵書)를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강태공처럼 낚싯대만 던져놓고 하염없이 병서만 읽었다. 강가에는 표모(漂母)라 불리는 빨래하는 여자가 많았다. 그 가운데 늙은 표모 하나가 점심 때가 돼 버드나무 그늘에 궁둥이를 붙이고 베 보자기 도시락을 풀어 밥을 먹으려는데 바로 옆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책만 읽는 젊은이가 도시락을 흘끔 보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숨 가쁘게 났다. 표모가 도시락 반을 덜어 젊은이에게 주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표모는 이튿날부터 아예 도시락을 넉넉하게 싸왔다.

하루는 표모가 준 도시락을 받아먹고 계면쩍은 얼굴로 “아주머니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성공하면 꼭 백배 천배 보답하리다” 하니 표모가 같잖다는 듯 혀를 차더니 “대장부가 제 입에 풀칠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훗날을 기약해? 젊은이가 불쌍해서 밥을 준 거지 나중에 보답을 받으려고 도시락을 나눈 줄 알아?” 하며 호통을 쳤다.

어느 날 그 칠칠치 못한 젊은이가 저잣거리를 걷고 있었다. 예나 다름없이 허리에는 긴 칼을 차고 옆구리에 병서를 끼고 걷는 모습을 저잣거리 왈패들은 눈꼴사나워했다. 왈패두목이 그의 길을 막고 섰다.

“그 칼로 내 배를 푹 찌르고 가던 길을 가든가 그럴 용기가 없거들랑 내 사타구니 밑을 기어가.”

그 젊은이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왈패의 가랑이 사이를 엉금엉금 기어서 나갔다. 항상 칼을 차고 병서를 끼고 다녀 뭔가 한바탕 눈요깃거리가 생길까 하고 잔뜩 기대를 품었던 구경꾼들 입에서 ‘푸’ 김빠지는 소리만 났다.

크게 우사(愚事·어리석은 일)를 당한 가랑이 무사는 잠이 오지 않았다. 왈패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나간 아픔보다는 표모의 혀 차는 소리가 더 매섭게 오장육부를 도려냈다. 얼마 후 그는 홀연히 고향 회음에서 사라졌다. 그의 이름은 한신이다.

때는 기원전,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도 혼돈은 계속됐다. 진시황이 죽은 진나라가 기울어지고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통일의 대의를 걸고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초나라의 항우, 한나라의 유방은 일진일퇴를 거듭했지만 승패는 나지 않았다. 인물 됨됨이에서 유방은 항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뼈대 있는 집안 출신에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항우에 비해 유방은 볼품없는 집안에 패거리들과 어울려 술이나 퍼마시던 건달이었다.

한신은 처음에 항우 진영에 들어갔다가 한신의 역량을 간파한 유방의 최측근 소하의 천거로 유방 아래서 대장군이 됐다. 항우는 평생 70여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다가 딱 한번 해하전투에서 한신에 패해 자결했다.

한신 대장군 덕택에 천하를 거머쥔 유방은 한신을 두려워해 그를 연이어 강등하다가 마지막엔 한신을 그의 고향땅 제후로 봉했다. 대장군 한신이 가장 먼저 찾은 이는 늙은 표모였다. 큰돈을 하사했다. 정장 마누라를 찾아가서는 조그만 돈주머니를 건넸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게 한 왈패를 찾아갔다. 왈패 무리는 꿇어앉아 목을 내밀었지만 한신은 껄껄 웃으며 “너희 덕택에 내가 이를 악물어 여기까지 왔다”라며 그들을 부하로 썼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유방에게 간언해 한신을 죽인 자는 소하였다. 바로 유방에게 한신을 천거했던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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