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당신의 과거와 화해하십시오

입력 : 2022-06-01 00:00

마음의 병이 큰 환자들은 과거에 얽매여 고통 받아

사회에 적응해 살수 있게 집착 벗어나도록 도와줘

타인에 대한 용서도 필요 원한은 자신에게도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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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굳이 구분해보자면 과거가 있고 지금 이 순간인 현재가 있고 그리고 나중에 올 미래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누구에게나 현재다. 이 현재는 찰나의 순간 과거로 변한다. 다가온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데 희망과 두려움이 상존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래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다.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인 과거는 비가역적인 성격을 띤다. 아무리 과거가 화려하거나 고통스러웠다고 해도 되돌아갈 수도, 재생해낼 수도 없다는 특징이 있다.

필자가 한때 진료했던 환자 이야기를 꺼낼까 한다. 그가 한결같이 필자에게 한 말이 있다. “저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주세요.”

좋은 소리도 3∼4회 반복해 들으면 지겨울 텐데 2년 가까이 똑같은 이야기를 듣자니 귀에 딱지가 앉을 수밖에. 게다가 그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해 허탈감마저 들었다.

이 글을 쓰는 중간에 한 친구로부터 이메일 하나가 날아왔다. 글 주제와 상관이 있는 것 같아 그대로 옮겨본다.

“구겨진 옷은 다림질하면 되고 찢어진 옷은 꿰매면 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한번 마음을 접으면 좀처럼 펼 수 없고 한번 마음이 찢기면 수선하기 어려워요. 몸에 생긴 상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어디를, 누구를 찾아가야 치유될 수 있을까요. 말에도 생각이 있어야 하고 행동에도 생각이 있어야 해요. 생각 없는 말과 행동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좌절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마음의 상처는 영원히 치료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그 친구도 진료과목이 산부인과인 의사다. 필자가 정신과 의사인 줄 뻔히 알면서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 하니 유구무언이다. 명색이 정신과 전문의인데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치료가 되지 않는 환자를 붙들고 왜 평생을 씨름해야 했을까. 친구와 필자가 ‘치료’라는 개념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그 친구는 완치를 뜻하는 것일 수 있고, 필자는 완치보다는 쾌유 쪽에 좀더 무게를 둔다.

마음의 상처가 크더라도 환자가 주변 상황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도록 도움을 준다면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평생을 마음이 아픈 사람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다양한 환자를 상담하면서 남들보다 일찍 통찰을 얻었다. 이미 박제돼버린 과거에 집착할 것인가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보통 마음이 아픈 환자는 지나간 일을 이야기하며 과거에 매몰된 모습을 보인다. 마음속 고통은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여 있을 때 발생하는 법이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 역시 과거에 있었던 일로 섭섭함이나 울분·분노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곤 한다. 그런데 필자는 치료자로서 의사 가운을 입고 있고, 환자는 의사에게 고통을 호소하려고 진료실을 찾는다.

환자와 상담이 끝나면 그를 반면교사 삼아 내 안에 있는 과거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려 노력한다. 정신과는 신체의 병을 고치는 다른 진료과목과 견줘 확연한 차이가 있다. 신체 질환은 원인이 되는 병변을 없애면 그만이지만 정신과에서 말하는 마음의 상처는 완전히 제거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그 상처를 일상생활에서 영향받지 않을 수준으로 희석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면 용서라는 과정도 필요하다. 원한을 품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던지려고 오랫동안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쥔 것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그 불덩어리가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을지언정 결국 자신도 화상을 입는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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