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06) 여승방

입력 : 2022-05-27 00:00

어린 여승들 비극의 잉태

어미를 찾는 핏줄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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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실댁이 산골짝 냇가에 돌미나리를 뜯으러 나왔다가 소나무 아래 풀숲에서 가느다랗게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를 듣고 다가갔다. 젊은 비구니 하나가 모로 누워 몸을 돌돌 만 채 다 죽어가는 듯이 뒹굴고 있었다. 지실댁이 옆에 주저앉아 비구니의 어깨를 흔들며 “스님, 정신 차리시오” 했다. 그러자 “으앙” 하는 고고성이 울리며 비구니가 아기를 낳았다. 지실댁은 은장도를 꺼내 탯줄을 끊고 치마를 찢어 냇물에 적신 다음 옥동자의 얼굴을 씻겼다. 비구니 산모는 소나무를 움켜잡고 울고만 있었다.

해가 떨어지자 지실댁이 한쪽 팔로 태아를 안고 다른 팔로 산모를 부축해 집으로 갔다. 시어머니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며칠이 지나 산모가 일어났다. 이상한 것은 비구니 산모가 제가 낳은 아기를 본체만체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기를 질식사시키려고 얼굴에 포대기를 덮어씌우려는 걸 시어머니가 간발의 차이로 뜯어말려 아기를 살렸다.

어느 날 새벽 오경이 지나 닭이 울자 동창도 밝았다. 아기는 시어머니에게 맡겨놓고 비구니가 앞서고 지실댁이 뒤따라 안개가 자욱한 둑방을 한참 걷자 안개가 걷히고 해가 떴다. 비구니의 걸음이 하도 빨라 지실댁은 따라가느라 벌써 땀이 비 오듯 해 안동포 적삼이 몸에 달라붙었다.

산길을 오르며 지실댁은 몇번이나 개울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바위에 걸터앉아 가쁜 숨을 가라앉혔다. 한나절을 꼬박 걸어 오르자 건너편 산허리 솔숲 사이로 암자가 빼꼼 보였다. 그러고도 개울을 건너 절간 마당을 밟는 데는 두세식경이 걸렸다. 나이 지긋한 주지 스님과 앳된 사미니(沙彌尼·어린 여자 승려) 일곱이 여승방의 온 식구다. 모두가 나와서 산모 비구니의 손을 잡고 흐느꼈다. 주지 스님이 지실댁 손을 잡고 주지 방으로 갔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 앞에 꿇어앉아 이마를 아홉번이나 땅바닥에 찧는 치욕을 당하고 청군대들은 …. 흑흑.”

주지 스님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흐느꼈다. 무지막지한 청군이 횃불을 들고 여승만 사는 작은 암자에 들이닥쳤다. 밥을 해달라며 절간을 태워버릴 듯 협박해 밥을 해줬더니 자루에 담아온 화주를 마시고는 난장판을 쳤다. 산돼지를 잡아와 마당에 장작불을 피워 그놈을 통째로 구워 화주를 물 마시듯이 하더니 암자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한달여 분탕질을 치고 떠난 게 작년 일이다. 사미니들이 하나같이 헛구역질을 하더니 배가 불러왔다. 주지 스님은 “너희들은 잘못이 없으니 절대로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연못에 몸을 던지는 여승,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겠다고 절을 떠나는 여승, 소나무에 목을 매는 여승 …. 남은 이들은 주지 스님 뜻을 따라 잉태한 태아를 출산하기로 마음먹었다.

출산 날이 며칠씩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쉬쉬해야 했다. 소문이 나면 신도들 발길이 끊어질 건 뻔한 일. 지실댁이 출산할 여승을 데리고 야음을 틈타 집으로 데리고 가서 대문을 꼭꼭 잠가버렸다. 찬모도 하인도 일년씩 휴가를 줘서 내보내고 안방 창문과 문은 이불로 막을 쳐 아기 울음소리가 새 나가지 못하게 했다.

스무날 사이에 여섯 아이를 순산해 모두 일곱이 됐다. 가마솥에 미역국을 끓일 때 닭 일곱마리를 잡아넣었다. 아들 넷에 딸 셋이었다. 주지 스님의 엄명으로 자신이 낳은 아기를 보지 못하게 했다. 출산한 사미니 일곱은 닥치는 대로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지실댁은 시어머니와 함께 쌍과부지만 스물네칸 기와집에 천석을 하는 부잣집이다. 아들 둘은 급제해 둘 다 한양에서 살고 다행스럽게도 다니는 절은 다르지만 고부가 독실한 재가불자다. 지실댁과 시어머니는 고래 등 같은 집이 항상 적막강산이었는데 여승 일곱에 아이 일곱이 와글거리니 사람 사는 것 같다며 오히려 좋아했다.

주지 스님은 이틀이 멀다 하고 내려왔다. 산딸기를 한 소쿠리 따와서 아기들에게 먹이며 그렇게 좋아했다. 지실댁 시어머니와 주지 스님은 갑장이라 서로 친했다. 시어머니가 주지스님의 팔을 끌었다. 사미니들이 대청에서 벽을 등지고 앉았다. 아기들이 젖을 빨려고 빨빨 기어서 사미니 품에 안겼다. 시어머니가 말했다.

“주지 스님, 일곱 아기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제 어미 젖을 빨고 있습니다.”

“쯧쯧. 핏줄은 속일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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