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듯한 인생

입력 : 2022-05-18 00:00

각자 상상한 코끼리에 대해 서로 자유롭게 의견 나누고 

퍼즐조각 맞추듯 완성하면 명쾌한 결론 얻을 수 있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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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로부터 재미있는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으며 한참 웃었다. 내용은 대강 이렇다. 제목은 ‘유대인의 조크(농담)’. 모세와 예수 그리고 프로이트·마르크스·아인슈타인이 하늘에서 치열하게 토론을 하고 있었다. 주제는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원리는 무엇인가’였다.

제일 먼저 나이가 가장 많은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발언에 나섰다. “율법이 전부입니다.”

그러자 성자 예수가 희생과 자비의 상징인 자기 손의 못 자국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사랑 없인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라고 반박했다.

정신분석학의 대부 프로이트가 자신이 쓴 책 <꿈의 해석>에서 몇몇 문구를 인용하며 느긋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무의식과 성욕이 아니고서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공산주의 혁명가 마르크스가 밥을 먹다 숟가락을 놓고 반박했다. “돈과 밥이 세상을 움직이잖아요. 만물의 근원은 물질입니다.”

마지막으로 천재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옆에 있는 칠판에다 ‘E=MC²(상대성이론의 에너지 등가원리 공식)’이라고 휘갈겨 쓴 다음 모두를 응시하며 말했다. “왜 이렇게 싸우십니까. 모든 것은 상대적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야기에 나오는 유명인이 모두 유대인이라는 점에 놀랐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 프로이트 발언에 자못 관심이 갔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충동을 ‘리비도’라는 개념으로 풀이했다. 그는 성욕을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진 정신적인 힘의 원천이라고 봤다. 일견 타당한 점도 있으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성욕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외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철학도 마찬가지다. 물론 일생을 다 바쳐 인생을 통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을 테지만 한두가지 이론·사상만으로 세상 진리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 속담에 ‘장님(시각장애인)이 코끼리 만지듯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친구가 보낸 이메일을 읽으면서 이 속담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물렀다. 보통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자신이 아는 부분만 가지고 고집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곱씹어보면 속담 속 장님이 결코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만져서 느낀 코끼리의 신체 일부를 온 정성을 쏟아 묘사한 것 아니겠는가. 다리를 만졌다면 기둥 같다고 할 것이고 귀를 만졌다면 부채 같다고 할 것이다. 또 몸통을 만진 사람은 코끼리를 벽처럼 느낄 것이다. 다만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코끼리 모습이 무조건 옳다고 한다면 그 실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상상한 코끼리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퍼즐 맞추듯 완성해간다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조언해준 우리네 뛰어난 지성의 선조는 ‘장님과 코끼리’ 비유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 그들이 남긴 인생론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인생 전체를 조망하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 보인다.

결국 통섭의 사고체계가 필요한 것일까. 종교·철학·문학·정치·사상 속 다양한 인생론을 섭렵하고 이 가운데 진리에 가깝다는 것들을 모으고 결합하고 또 쪼개는 작업을 거친다면 좀더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복잡한 세상을 사는 각양각색 인간군상이 있고 인생이 코끼리를 묘사하는 것처럼 답이 딱 정해져 있지 않으니 세상 사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가 보다.

“할아버지, 장님이 만진 코끼리 다리가 사람의 인생이 아닐까요” 인생을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던 손자 녀석이 툭 던진 말에 “옳다, 옳다!”며 무릎을 탁 쳤다. 맞다. 인생은 어쩌면 장님이 만진 코끼리 다리일 수도 있겠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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