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국수 한그릇에 화사해지는 기분

입력 : 2022-05-13 00:00

사람 기분이란 건, 사람 성격하고도 상관없는 것 같고 남이 어떻게 보느냐 하고도 아무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쉽게 털어지지 않는 기분이 나를 가만 안 내버려둘 때가 있습니다. 그냥 기분 때문에 아무것도 못해서 사람 사이에서도 이상한 사람 되는 경우라든가 약간 멜랑꼴리한 기분도 그렇죠. 그런 날은 뭘 해도, 제자리로 돌아가지지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슬픈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실컷 가라앉다가 마음 한편으로 밝은 햇살이 찾아온대요. 또 어떤 이는 사람 많은 데 가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걸 한참, 지켜본답니다. 그러면 좀 살겠다 싶어진다는데요.

몇 사람이 점심 먹으러 나가면서 뭘 먹을지 의견을 모으는데, 한 사람이 그럽니다. “나 오늘 기분이 그래서 국수를 먹어야겠는데 다들 괜찮으세요?” 분명한 건 그 사람은 국수를 먹고 뭐든 나아졌을 거라는 겁니다.

슬플 때는 부드러운 음식이 최선의 해결책이고 근심·걱정이 많을 때는 구운 감자나 국수 같은 탄수화물 당질이 뇌를 자극하고 기분을 끌어올려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김정미 시인의 시처럼, 끓는 물에 국수를 삶는 행위는 묵직하고도 물컹한 뭔가를 가져다줍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국수를 먹는 행위 역시 저음으로 짠하게 와닿는 뭔가가 있습니다. 그래요. 국수처럼 뜨겁게 속을 훑는 일들이 지나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질 겁니다. 언젠가 이맘때 들일을 하면서 새참으로 나온 국수를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자니 한낱 기분이란 것이 또 뭐가 중요하겠는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 봄날, 이 땅의 신성한 노동 앞에 국수 한그릇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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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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