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백세시대, 늦게라도 철이 들자

입력 : 2022-05-04 00:00

나잇값 못하는 어른 부지기수 철이 든다는 건 인격성장 뜻해

50대 전후라면 자기성찰 필수 돌처럼 굳은 버릇도 개선 가능

남은 반백년은 좋은 습관 들여 ‘진짜 어른’으로서 즐겁게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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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정신 치료를 주제로 한 외국어 원서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여기엔 50대가 넘는 환자는 치료가 부적합하다고 쓰여 있었다. 그 당시는 평균 수명이 짧았을 테니깐 이런 이야기가 당연하게 여겨졌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인이 박인 습관 등을 고치는 데 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100세 시대’가 화두가 된 지금 환자에게 그런 얘길 했다간 사달이 날 수 있다.

정신 치료 가운데 환자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는 방법이 있다. 언뜻 듣기엔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유일하고 익숙한 습관에 지나치게 의존해 모든 상황을 이것으로만 헤쳐나가려고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환자가 만들어놓은 견고한 다리 같은 것이라 철거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필자는 종종 ‘습관을 바꿔준다’라는 말을 ‘철이 들도록 이끌어준다’로 치환해 설명할 때가 있다. 철이 든 사람이라면 주어진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해결방법을 찾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용하는 힘이 약해 장애가 발생한다.

철이 든다는 것은 인격이 성장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철이 드는 것은 나이와도 관련 있다. 어린아이는 철들기 어렵다. 심리학에서는 이때를 자기중심적인 시기라고 일컫는다. 쉽게 말해 자기밖에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차차 나이가 들어갈수록 보통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과 소통하려고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양보하기도 하고, 때론 협상을 시도해 양보를 얻어내기도 한다. 철이 드는 과정은 일반적일 뿐, 여태껏 철이 없는 어른도 많다. 이른바 나잇값 못하고 자기만 챙기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미숙한 인격을 가졌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 말일 게다.

철이 드는 과정이나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어렸을 때부터 성숙해지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특정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철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철이라는 것은 일정한 세월이 흘러야 든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철들자 이별이라는 말이 있다. 철이 좀 들만 하니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우린 ‘100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50세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제 갓 반환점을 돈 것이다. 반백년간 아무리 단단하게 굳어버린 습관이라 하더라도 이를 바꿀 시간이 충분하고, 그 바뀐 습관으로도 살아갈 날이 새털처럼 많이 남아 있다.

여태껏 자신의 인생을 망쳐왔을 것 같았던 습관이 있었다면 포기하지 말고 개선할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50대 전후의 사람이라면 성찰할 시간을 두고 지금껏 얼마나 철없는 생활을 했는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좋은 술은 오랜 기다림 끝에 탄생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깊어지고, 신중해지고, 타인을 배려하고, 비난하는 말을 줄이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에게 남은 인생이 반드시 즐거워지리라.

‘여생상락(餘生常樂)’이란 말이 있다. ‘나머지 인생을 항상 즐겁게’라는 뜻이다. 아무리 철이 없다 한들 인생을 즐겁게 보내고 싶어 하는 욕망은 철든 사람과 똑같을 것이다.

‘老人頭上雪(노인두상설) 春風吹不消(춘풍취불소)’ 늙은이의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 봄바람이 불어와도 녹지 않는다는 뜻이다. 남의 정신건강을 챙겨온 의사로서 눈은 나이가 들어 철이 든 세월의 흔적이고, 봄바람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젊은이의 철없음을 나타내려 한 게 아닌가 해석해본다.

여생상락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따로 없다. 철없던 과거 시절과 결별하고 이 시대 ‘진짜 어른’이 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바야흐로 100년을 사는 시대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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