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핫플] ‘그리팅맨’, 정중하게 전하는 인사...평화를 향한 작은 몸짓

입력 : 2022-04-29 00:00 수정 : 2022-04-29 07:42

[우리동네 핫플] ④ 경기 연천 인사하는 사람 ‘그리팅맨’ 

옥녀봉에 10m크기 전신상…15도 허리 숙여 유영호 작가 작품…인종적 편견없는 하늘색

인간 본연·태초 모습 나타내려 나체로 만들어

해넘이때 작품·낙조·주변 풍경 어우러져 ‘장관’ 북쪽 바라보고 있어…서로 마주보는 날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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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 옥녀봉에 자리 잡은 그리팅맨. 북쪽을 향해 15도 정도 허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서 남북한 협력을 넘어 간절한 통일 염원의 뜻도 읽힌다. 연천=현진 기자 sajinga@nongmin.com

“아들! 인사 잘하고 다녀. 사람 관계에서는 인사가 시작이고 끝이니깐.”

다 자란 성인이건만 매일 출근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인이 박이도록 같은 말을 되풀이하신다. 벽창호인 기자 역시 “네”라는 짤막하고 퉁명스러운 답변을 고집스레 반복한다.

그런데 오늘만은 그의 잔소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경기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에서 기자가 글을 쓰는 지금도 인사를 하고 있다는 ‘그리팅맨(Greetingman·인사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207m 높이로 비교적 낮은 구릉인 옥녀봉에 올라가면 희한하고 별난 광경이 펼쳐진다. 나체를 한 10m짜리 거대한 전신상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온 몸이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어 생경한 느낌을 더한다.

그리팅맨은 인간의 ‘인사하는 행위’에 대해 집착하리만큼 연구하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구현해낸 유영호 작가의 작품이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바르트는 작품 감상의 접근 방식을 두가지로 분류했다.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하는 일반적인 해석에 따라 읽어내는 ‘스투디움’, 일반적인 해석을 배제하고 자신이 오롯이 느끼는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푼크툼’이 그것이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문외한이라 스투디움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해보기로 했다. 알아야 면장이잖나. 옥녀봉에 가기 며칠 전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귀찮도록 질문을 던졌다.

“왜 푸른색이냐고요? 인종적 편견이 없는 전세계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색깔이잖아요. 그리팅맨이 인사하는 각도에도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딱 15도로 허리와 고개를 숙이고 있거든요. 오랫동안 실험한 끝에 상대방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는 적당한 기울기를 찾아냈다고나 해야 할까요.”

그리팅맨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데에도 이유가 있다. 인간 본연의 모습, 태초의 모습을 나타내려 했단다.

그리팅맨은 옥녀봉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 중구 롯데시티호텔 앞에도 있다. 인사하는 사람은 한반도 밖으로도 진출했다. 미국·우루과이·파나마·멕시코·브라질·에콰도르·인도네시아에도 세워졌다.

그가 이렇게 인사에 관심을 두게 된 까닭이 궁금했다.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는 순간 관계가 시작되고, 친구가 되잖아요. 사람 관계만이 아녜요. 인사하는 마음은 인간과 자연·우주에 이르기까지 흩어진 것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어요.”

오랫동안 그리팅맨을 응시해본다. 먼저 인사하는 겸양, 굽실거리지 않는 절제, 자연과 실존을 향한 경외…. 그리고 관계의 벽을 허물어보겠다는 그의 웅숭깊음에 숙연해진다.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자유다. 어떤 이는 북한을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이 종북·친북을 뜻한다며 비난한 적도 있다. 작품에 담긴 의미를 왜곡해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에게조차 정중히 인사할 것 같은 그리팅맨을 떠올리니 실소가 터져나온다. 똘레랑스(관용, 존중을 뜻하는 프랑스어)맨! 그리팅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를 일이다.

유명 작가의 예술작품이 한갓진 데 자리를 잡은 과정도 사뭇 흥미롭다. 군에서는 원래 옥녀봉에 정자가 있는 전망대를 세우려고 했다. 한데 군내 다른 곳에도 정자 전망대가 이미 수십개가 있어 매력이 없으리라 판단했다. 그러다 평화와 공존을 상징하는 그리팅맨이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연천과 어울릴 것으로 생각해 작가와 협업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2016년 4월23일부터 이곳에서 인사를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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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기 전 그리팅맨의 모습과 주변 풍광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옥녀봉은 낮에만 방문할 일이 아니다. 해넘이 시간대 작품과 주변 풍광을 함께 감상하면 몽환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여덟폭 병풍 같은 야트막한 산이 임진강을 껴안고, 내일의 향기를 머금은 낙조가 온 누리를 황금색으로 물들인다. 연금술사가 따로 없다.

그 시간 하늘 아래로 지는 해에게 기품 있는 자세로 인사를 전하는 그리팅맨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완성하려는 듯하다.

‘그리팅맨 프로젝트’는 미완성이다. 작가가 작품을 설치했을 때 한개만 생각한 게 아니다. 남쪽의 옥녀봉에 하나, 휴전선 너머 옥녀봉 맞은편 마량산에 다른 하나를 마주 보게 세우는 것이 작가의 원래 계획이었다.

그게 맞긴 맞다. 인사를 했는데 상대방이 받아줘야 비로소 관계의 꽃이 만개한다. 남한땅과 북한땅의 그리팅맨이 같이 인사하는 ‘상징계’가 하루빨리 펼쳐지길 기원해본다.

옥녀봉을 찾은 오늘 하루 꽤 긴 시간 ‘인사할 때의 태도’를 되돌아봤다. 인사 방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볍진 않았는지, 상대방이 먼저 인사하길 바라는 옥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는지, 진심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기성품 같은 인사를 해오진 않았는지 말이다.

오늘 만난 그리팅맨은 단순한 설치물이 아니었다. ‘인사의 연결성’을 깊이 있게 사유하고 풀이해줄 철인(哲人)이었다.

연천=이문수 기자 moon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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