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나는 누군가에게 함부로는 아니었는지

입력 : 2022-04-22 00:00

사실 시인은 벌거벗을 줄 알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을 들킨 것 같아 하며 얼굴 붉히는 지점에서 시가 발화한다. 잘 가리고, 잘 숨겨놔봤자 그것은 시가 아니라 얼룩일 때가 많다. 시인이 아픈 사람이나 감옥에서 도착한 연락 앞에 무릎 꿇고는 그것도 모자라 삶을 뒤척이는 것, 그 겸허한 방식을 기록하는 것 또한 시다.

스리랑카를 여행할 때였다. 여행자라서 예매를 하지 못해 기차나 버스에서 서서 가는 일이 많았다. 기차는 좀 나았지만 버스 같은 경우에는 길이 좋지 않아 몇 시간 서서 가는 일은 고될 게 뻔했다. 그럴 때마다 선뜻 자리를 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에는 매번 편히 앉아 가면서, 먼 타국에서 온 여행자들에 대한 대접이 남다른 나라구나 하는 감탄만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곳까지 편하게 앉아 한가롭게 창밖을 내다보는 일은 몇 번이고 행복했다. 그런데 나는 창밖으로만 눈길을 가져가느라 차 안 사정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사람들은 한동안 앉아 가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앞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들의 배턴터치에는 사양하는 일도 없고 그에 따르는 큰 인사도 없었다. 서 있는 사람과 자리를 교체하는 것이 스리랑카 사람들의 국룰(국민 규칙)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넙죽 자리를 양보받고는 몇시간이고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졸기까지 했다. 이런 세련되면서도 열려 있는 문화는 언제, 어떤 마음으로부터 생겨났을까.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만 생각하면 등짝이 후끈하다. 시를 함부로 쓰고 있는 것도 모자라, 나는 너무 함부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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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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