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호의 이런 생각] 청와대, 청자기와로 다시 이어야 하지 않을까

입력 : 2022-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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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재현사업 완료를 기념해 고려청자박물관 마당에 세운 청와정자.

청자의 요람 월주요(중국의 옛 월주(越州)에 속하는 도요지(陶窯址)를 일컬음) 장인들은 오월국이 멸망하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용천요와 경덕진요가 새로 생긴다. 광종(光宗, 925∼975)은 월주요 장인들을 고려로 부른다.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 황해도 배천군 원산리 등지에 40m나 되는 벽돌가마를 만들고 청자를 빚는다. 970년대로 추정하는 때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 청자다. 중국식 벽돌가마에 월주요 장인들이 담갈색 청자유를 발라 만든 녹갈색 ‘청자순화4년명항아리(국보 제326호)’는 고려청자의 기원이다.

993년부터 1019년까지 거란이 세차례 침입한다. 개경이 불타고 현종(顯宗, 992∼1031)은 나주로 피신한다. 청자를 아끼고 사랑했던 예종(睿宗, 1079∼1122)은 강진에 황실용 청자를 생산하는 가마를 만든다.

의종 11년 1157년 4월1일 이궁(離宮)을 완성한다. 훗날 등극해 명종이 되는 아우 익양후(翼陽侯) 호(晧)의 집을 빼앗아 지은 수덕궁(壽德宮)이다. 양이정을 짓고 청자기와(靑瓦)로 이었다(정인지 외, 1997: 328∼330).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라 이름한 것은 최고 문화를 꽃피운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한껏 뽐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청와대는 비색이 아니라 그냥 청색이다. 고려 황궁 양이정을 이었던 그 청자가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 때에는 청자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자재현사업을 완료했다. 이를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 마당과 고려청자박물관 마당에 양이정을 재현한 청와정자를 지었다. 청와대도 진짜 청자기와로 다시 이어서 개방해야 하겠다.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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