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바이러스란 ‘어떤 분’인가

입력 : 2022-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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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 존재…인류 괴롭혀 코로나로 606만여명 사망 ‘재앙’

조현병 환자 ‘망상’ 떠오르기도 치료약 등 개발…머지않아 극복

 

‘바이러스(Virus)’ 단어의 라틴어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독물’ ‘독소’라는 뜻이 나온다. 후대에 와서 바이러스의 정체를 의학적으로 규명하면서 사용해온 용어일 것이다. 바이러스 용어가 담긴 기록을 살펴볼까. 1892년 러시아 생물학자 드미트리 이바노프스키가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존재를 발견했고, 미국 생화학자 웬들 메러디스 스탠리는 1935년 최초로 이 바이러스를 단백질 결정체의 형태로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공로로 194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인류 역사상 여러 형태의 바이러스가 우리를 괴롭혀왔다. 코로나19는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우한에서 발원해 전세계로 번져나간 미증유의 바이러스가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프랑스 뉴스통신사 AFP가 각국 보건당국의 발표를 바탕으로 올해 3월21일 기준 코로나19에 따른 피해를 집계했다. 전세계 누적 감염자수는 4억6480만9377명인데 이 가운데 사망자는 606만2536명까지 치솟았다. 숫자만으로도 얼마나 큰 재앙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이러스가 유행한 지 벌써 3년째. 국내에서도 여전히 확산세가 언제 꺾일지 예측이 엇갈린다. 다만 백신과 치료약을 속속 개발하고 있으니 전염병을 극복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 했는가. 어떤 바이러스라도 인류가 집단지성을 발휘해 그 정체를 벗겨내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얼마든지 예방 백신과 치료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무리 전파력이 강하다 한들 반드시 종말을 맞기 마련이다.

질병관리청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나 예방 정책을 잘 따라주고, 서로 격려하며 고통을 인내한다면 우리는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다.

너무 우울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같아 10여년 전 의사 시절 겪은 차마 웃지 못할 경험도 꺼내볼까 한다. 한번은 20년 넘게 정신과 전문병원에 입원해 있는 만성 조현병 환자를 상담해본 적이 있다.

이 사람은 20년 전부터 바이러스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 잠도 자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이 바이러스를 퇴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분 머릿속에 그려진 망상은 대강 이렇다. 우주의 어느 별에서 지적 생명체가 지구에 날아와 바이러스 형태로 변해 지구에 잠복했단다. 때가 되면 바이러스는 인간 모습으로 바꾸고 지구를 정복하는 게 결말이다. 급기야 바이러스 퇴치 부대를 자체적으로 구성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물론 의학적인 증거가 없는 터라 환자의 망상을 치료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를 치료하는 막바지 시기도 또렷이 기억할 만큼 특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제가 바이러스와 전쟁을 이끄는 총대장인데 주치의 선생님만 명령을 내려주시면 지금 당장 바이러스를 퇴치하겠습니다”라고 하니 마지못해 그러라고 했다. 아무리 합리적인 근거를 갖다대고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그 망상이 깨지질 않으니 나도 그의 눈높이에 맞춰 답한 것이다. 3일 뒤 병원을 찾은 그의 말이 점입가경이다. “선생님, 이제 정말 안심하셔도 됩니다. 우리 군대가 지구에 침입한 바이러스 대부분을 소멸시켰으니 당분간은 전세계가 평화로울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필자는 자못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마치 사령관이 이야기하듯 그의 노고를 위로했다.

당시를 돌이켜보건대 그의 망상이 사뭇 통찰이 있다. 의학을 따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평범한 시민으로 살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이 바이러스의 위험함, 예방의 중요함을 서사로 풀어낸 게 아닐까. 필자 역시 그가 창안한 바이러스 창궐 이론이 하도 그럴 듯해 요새 ‘정말 외계인이 바이러스 형태로 지구 침략을 감행한 게 아닐까?’라는 망상에 젖어들 때가 있다.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그때 생각만 하면 실소가 절로 나온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이근후 명예교수는…

▲1935년 경북 대구 출생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학 박사)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등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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