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입력 : 2022-04-01 00:00


봄날입니다. 꽃의 시간입니다. 꽃 앞에서 스마트폰이 바빠지는 시절입니다. 꽃,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 가운데 하나가 김춘수의 ‘꽃’입니다. 국민 시, 청춘의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춘기나 성년식을 저 시와 함께 통과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아주 외롭거나 아니면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우정과 연애, 만남과 이별 사이에 저 시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 관계는 조금 싱거웠을 겁니다. 저 시에서 저는 꽃보다 이름과 이름 불러주기에 눈길이 더 갑니다. 우리 안에는 누구나 시의 마음이 있는데, 그것을 달리 말하면 이름을 붙여주는 능력이겠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저 시를 제 방식대로 읽어왔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불러주지 않아도 꽃은 꽃이라는 것이지요. 꽃은 우리가 꽃이라고 부르든 말든 개의치 않습니다. 꽃을 꽃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의 일, 혹은 ‘나’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이런 호혜성이 우리 삶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내(인간)가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그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는 대목은 과도한 자기(인간) 중심주의라는 혐의를 받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의 전반부보다 ‘그’와 ‘우리’가 강조되는 후반부를 애호합니다.

낯익으면서도 낯선 꽃의 시간, 누군가에게 가서 꽃이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유독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01010101401.20220401.900046204.05.jpg

이문재 (시인)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