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다 쓴 치약 쥐어짜듯이

입력 : 2022-03-18 00:00

아들내미가 어릴 적에,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아빠, 나무는 바보야.” 왜냐고 물으니 “움직이지도 못하잖아”라는 것이었다. 걷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차 타고 다니는 우리가 바보라고 답을 하려다가,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아들이 10대로 접어들었을 때, 그때 끊긴 대화를 이어갔다. “인간은 왜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걸까.” 아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아들이 “나무처럼 안 움직이겠지”라고 말했다. 그래, 엽록소가 있었다면 우리는 숲처럼 살았겠지.

우리는 광합성을 못해서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한다. 인간은 천지자연과 연결되지 않으면 한순간도 버틸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무와 벌레를, 땅과 물을 우습게 대한다. 봄이 ‘저절로’ 온다고 여긴다. 모든 생명에게 봄은 성장하고 번식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결코 혼자가 아니다. 뭇 생명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간다.

이현승의 시는 ‘터질 수밖에 없을 때’ 터지듯이 오는 봄과 마주한다. 그렇다. ‘가지 끝에서 잎 나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새순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이보다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저절로’ 오는 봄은 없다. 다 쓴 치약을 쥐어짜듯이 봄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들아, 봄이 오는데, 봄은 오는데, 우리는 지금 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다 쓰는 것인지…. ‘화약고를 지키는 촛불’을 마음 안에서 찾아보자. 우리, 숲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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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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