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바람 속에 살던 풀씨들이 내려와 자란다

입력 : 2021-07-16 00:00



어느 날부턴가 몸속에 나비 한마리가 날아와 앉은 느낌. 아니, 나비보다는 크고 날갯짓도 더 커서 새라고밖에는 부를 수 없는 감정이 심장 한가운데 앉아만 있는 것이다. 먹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새장을 따로 만들어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얼마간을 퍼득거리고, 노래하고, 심장을 쪼아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다시, 뭐라 부를까. 이 새 한마리를.

하지만 이 존재 덕분에 힘이 난다. 이 존재에 맥없이 기대게도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일. 인연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일.

이희중 시인은 인연으로 묶이게 된다고 선언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기 전에 오래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에 그렇게 썼다는 것을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바람 속에 살던 풀씨들이 내려와서 제 마음대로 자란다’는 것인데 미리 생각해본다고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인연은 단단하고 따뜻한 것일 수만은 없다. 그 과육은 쉽게 상하고 터져서 진물을 흘리기도 하고 깨져야 할 껍질은 더 부풀기만 할 뿐 깨지지도 않는다. 그 오묘함 앞에서 우리는 기쁨 대신 눈물을 쏟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연이 아니라면 어찌 어떻게 사람의 싹을 틔울 수 있으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찌 서로에게 묶일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다르게 살아온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두 사람이 하나로 묶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인연인 것에 갉아 먹히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우리는 분명 인연인 것으로부터 ‘테’ 하나를 더 얻고 만다. 이것만은 진실이다. 투명하면서도 완벽한 진실.

01010101401.20210716.900027183.05.jpg

이병률 (시인)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