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피사로, 두 여인의 대화

입력 : 2021-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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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 ‘젊은 두 여자농부’, 1891∼1892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최근 정년을 맞은 교수님의 은퇴기념 온라인 강연을 듣게 됐다. 그러다 문득 정년이라는 것이 제2의 삶을 시작하기 전 매듭을 짓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다면 지금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숨을 돌려야 할 때가 있는데, 잠시 쉬면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는 지점이 바로 정년이다.

화가들이 회고전을 가질 때 기분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젊은 두 여자농부>는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1830∼1903년)가 환갑을 갓 넘긴 1892년 1월에 회고전을 열며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회고전이란 한 화가의 작품세계와 삶을 돌아보는 자리다. 지금까지의 작품을 나란히 전시해놓고 그 작가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형식을 띠곤 한다. 회고전을 성공리에 치르면 작품 가치가 새롭게 매겨지는 일도 종종 있다. 피사로는 회고전을 거친 후 100프랑 정도였던 옛 작품들을 25배 오른 가격에 팔 수 있게 됐다. 그 회고전을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젊은 두 여자농부>였다.

늘 자그만 화폭에 전원 풍경을 담아왔던 피사로답지 않게 이 그림은 평소보다 두배 이상 규격이 크다. 게다가 화면에 두 인물을 가득 채울 정도로 비중을 높인 점도 과거 작품과 견줘 이례적이다.

그림과 인물의 크기가 커지자 피사로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관람자가 전체 분위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표정이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샅샅이 읽으려 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그림 속 두 여인이 어떤 사이이며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저 멀리 포도밭이 보이고 오른편의 여인이 긴 막대기 같은 농기구를 든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밭일을 하던 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임시 고용인일까, 가내 하인들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가족의 일원일까. 하루에 몇시간 일하고 얼마나 쉬는지, 포도주는 팔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집에서 자급자족하려는지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인물의 초점 없는 시선, 턱을 괸 모습, 희로애락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는 화가의 의도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보기 어렵다. 다만 이들은 우물가에 둘러앉아 있거나 시장에서 만난 여인네들처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흥미진진한 소문 보따리를 풀어놓는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저 침묵 속에서 일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 몇마디 말을 건네는 분위기다.

둘 중 한 사람은, 아니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어떤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 주인공이 그랬듯, 그림 속 두 여인도 언제쯤 이 막연한 기다림이 마무리될지 아리송하다. 뭔가 말하고 싶지만 자신이 느낀 것에 확신이 없어 머뭇거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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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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