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고에 길을 묻다] 산업화로 농고 입지 축소…학과 다양화로 재도약 ‘안간힘’

입력 : 2021-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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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농기계 운영 실습을 하고 있다. 고교 시절부터 농업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쌓은 이 학교 학생들조차 졸업 후엔 대부분 비농업계로 진출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주=김병진 기자

미래농의 미래, 농고에 길을 묻다 [1부] 명문고는 옛말…농고 위상 ‘격세지감’

줄 잇는 일반고 전환과 개명. 졸업생 영농분야 진출 비율 1%대. 오늘날 농업고등학교(이하 농고)가 처한 현실이다. 오래전 지역사회를 주름잡았던 농고의 명성과 위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농업의 미래를 위해 ‘농업후계자 양성소’로서의 농고의 역할과 비중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에 <농민신문>은 3부에 걸쳐 농고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짚어본다. 또 이를 통해 청년농 육성의 산실로서 앞으로 농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희망이 깃든 미래농의 미래를 열어보고자 한다.

 

[경기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에 가보니]

1980년대 학생수 700명 넘어 한국 농업 전문인력 양성 선도

1990년대 산업화로 위상 흔들 급격히 변한 농업 현실 반영 

원예·축산·식품산업·조경학과 스마트팜과 등으로 개편 추진

전진대회 참가 실무능력 배양

졸업생·귀농준비 중장년 위해 2년제 농업전문학교도 운영


1960∼1970년대 농고는 지역인재들이 진학하는 명문고로 통했다. 졸업생들은 농업과 지역사회를 이끌며 농고의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농업 비중이 축소됐고 농고의 입지도 좁아졌다. 지원자 감소로 문을 닫거나 인문계로 전환하는 등 쇠퇴기를 맞은 것이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농업교육의 자존심을 지키며 고군분투하는 농고가 있다. 한국 농업교육의 간판 격인 경기 여주자영농고(교장 이성덕)다. 8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여주자영농고를 찾아 과거의 영광을 되돌아보고, 현재 농고가 안고 있는 고민과 생존전략 등을 들어봤다.


◆농고, 빛나는 전성기는 지나고…=5월31일 여주자영농고 농업기계 운전 실습장. 6교시 농업기계 운전·작업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인 이곳에서 2학년 학생 20여명이 트랙터에 오르기 전 주의사항을 듣고 있었다. 한명씩 차례대로 교사와 함께 트랙터에 오르자 나머지 학생들은 눈빛을 빛내며 친구의 실습과정을 지켜봤다. 이 과목은 필수 농기계 조작법을 이론·실무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어 기계에 관심이 있거나 실제로 농사를 지으려는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외에도 학생들은 원예·축산·식품산업·조경 등 4개 학과를 선택해 관련 수업을 들으며 미래 농업인력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축적한다. 이렇듯 잘 짜인 커리큘럼과 94만9791㎡(28만7000평)의 부지에 설치된 각종 실습장들은 여주자영농고의 자랑거리다. 경기지역뿐 아니라 전국의 중학생이 입학 신청을 할 정도여서 정원 미달이라는 고민은 여주자영농고의 몫이 아니다.

이처럼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농고로 자리 잡은 여주자영농고지만 사실 전성기는 역사가 된 지 오래다. 찬란했던 농고의 전성기는 잘사는 농촌 건설이 국가적 과제였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여주공립농업학교로 개교한 여주자영농고는 1970년대초부터 순수 농고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1973년 일반 대학교 진학을 위한 보통과를 폐지하고 임업과를 1학급 증설하는 등 순수 농고로서의 틀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어 1984년 교명을 변경(농고 → 자영농고)한 이후부터 농업자영자 양성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당시 전체 학생수는 700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하지만 농업이 위축됨에 따라 이같은 위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학생수다. 현재 전체 학생수는 423명으로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신입생 200명 모집에 300여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해가 부지기수였지만, 2000년대부턴 지원자 감소 추세에 맞춰 모집정원을 줄였다. 여기다 농업에 뜻이 있어서가 아닌 성적에 맞춰, 또는 학업에 취미가 없어 농고에 진학하는 학생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 2학년 학생은 “사실 공부하기 싫어 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농업분야로 진출하진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명문고로 통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인 셈이다.


◆커리큘럼 다양화로 학생 선택권 넓혀…재도약 모색=여주자영농고는 달라진 농업과 농고의 위상에 패배의식을 가지기보단 자생력을 기르려고 노력 중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여기에 맞는 생존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먼저 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커리큘럼 다양화를 모색하고 있다. 오늘날의 농업이 농사를 짓는 행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농축산물 가공이나 데이터 분석 등으로 확대된 만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기존 4개 학과에 대해 스마트팜과·동물자원과·식품가공과·산림조경과로 개편을 추진 중이다. 스마트팜과에서는 시대 흐름인 스마트농법을 배우고, 동물자원과에서는 전통적인 축산업뿐 아니라 반려동물에 대해 교육하는 등 달라진 현실을 교과목에 반영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실무경험을 쌓는 것도 돕고 있다. 가령 학생들은 매년 ‘FFK(Future Farmers of Korea·한국영농학생회) 전진대회’에 도전하며 실무능력과 전공분야 지식을 겨룬다.

윤여진 교사(영농부장)는 “이 대회는 학생들이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특히 대결 종목 중 하나인 ‘과제이수 발표’에 참여한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렇게 축적한 경험은 나중에 농업분야에 진출했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주자영농고는 또한 누구나 농업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졸업생이 훗날 농사를 짓고 싶어 한다면 다시 농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년제인 전문학교에서는 농고를 졸업한 20대나 귀농을 준비하는 중장년층 등 다양한 연령층이 한데 모여 농업 관련 이론과 실무를 배운다.

이성덕 교장은 “농고를 졸업했다고 해서 바로 농업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경직된 생각”이라며 “학생들이 미래 농업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들이 원할 때 언제든 농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늘날 농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여주=최문희 기자 moon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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