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자그맣고 미약한 시작 흐르고 흘러 한강 이루다, 검룡소

입력 : 2021-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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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위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계단식 바위를 타고 작은 폭포를 이루며 한강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떼고 있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⑨ 강원 태백 검룡소

석회암 기반 둘레 20여m 아담한 못 한강의 발원지 … ‘용신이 사는 못’ 의미

강한 물살로 형성된 계단식 계곡 장관 조양강·남한강 … 몸집 불며 마침내 ‘한강’

 

친애하는 H에게


누구나 그렇듯 잠시 ‘밥벌이의 고단함’에 대해 푸념할까 합니다.

‘끝, 끝없는 바람….’

‘바람과 나’라는 노래의 첫 구절입니다. 가수 한대수가 만들어 1971년 <김민기 1집>에 실렸으며 1974년에 한대수가 1집을 내면서 다시 불렀습니다. 1995년에는 가수 김광석이 <다시 부르기 Ⅱ> 앨범에서 리메이크했지요.

바람이라는 것은 본시 세차게 불다가 잠시 멎기도 하고 멈췄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불기도 하는 존재 아닌가요. 그런데 대수 형은 ‘끝, 끝없는 바람’이라고 썼습니다. 불다가도 잠시 멎을 법도 한데 끝없는 바람이라니요. 돌아서면 기획·취재·마감, 돌아서면 기획·취재·마감. 이쯤 하면 잠시 쉬었다 갈 만도 한데 이 ‘끝없는 마감’ 앞에서 가끔 이 노래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정말 ‘끝없는 바람’ 앞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표현할 수 없는 문장입니다. ‘잠시만이라도 바람 잘 날이 있을 법도 한데 이 바람은 끝도 없구나.’ 기자의 숙명입니다. 그렇게 푸념하다 어느 날 문득 바람은 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흔히 불어오는 것이 바람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바람의 숙명이니까요. 그렇다면 바람을 즐기면서 바람을 향해 나아갈 일이지 바람 타령이나 하고 있다니요. 한심스러운 제 모습을 보자 다시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 바람에 내 몸 맡기고 그곳으로 가네.’

그렇습니다.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만 탓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초연히 ‘바람에 내 몸 맡기고’ 말이지요.

끝없이 굴러가는 시냇가 조약돌은 흐르는 물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물에 제 몸 맡겨 구르고 구르다 모난 곳 다 닳아 조약돌이 되었고, 연어는 거친 물살을 헤치고 거슬러 올라 자신이 태어난 강의 원류에서 생을 마칩니다.

강원 태백의 ‘검룡소(儉龍沼)’에 다녀왔습니다. 검룡소는 한강의 시원지(始原地)로 물이 시작된 곳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까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곳입니다. 모든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서울이 대한민국의 중심지가 된 것도 한강 덕분입니다. 그 원류를 찾아가는 길. 아주 오래전 누군가는 이 큰 한강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겠지요. 그 처음이 궁금해 한강을 거슬러 오르던 한사람을 떠올립니다. 마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던 광석이 형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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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발원지 검룡소는 둘레가 20여m에 불과하지만 하루 2000∼3000t의 지하수가 솟아오른다.

검룡소는 ‘용신(龍神)이 사는 못’이라는 뜻입니다.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하려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가장 먼 곳의 상류를 찾다가 이곳임을 알고는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 자국이 이 못이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창죽동에 위치한 검룡소 주차장에서 검룡소까지는 1.5㎞로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족합니다.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온갖 나무들로 우거진 숲속 길에는 이름 모를 새소리와 발원지에서 갓 흘러나왔을 신선한 계곡의 물소리로 가득합니다. 길도 험하지 않아 산책길로도 훌륭하며 산림욕을 하기에도 충분합니다. 검룡소에 가까워지자 바위와 계곡에 끼어 있는 이끼가 태곳적 신비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발원지에 이르면 이곳을 잘 볼 수 있도록 덱(Deck)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풍경은 계단 형태로 흘러내리는 검룡소의 계곡입니다. 계단 형태의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용트림을 하는 용의 모습 같습니다. 이곳의 암석에는 층리라는 금이 가 있는데 강하게 흘러내리는 물살이 암석을 부서뜨려 계단식 통로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 덱 계단을 올라갑니다. 올라서니 아, 조그만 못이 하나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젖줄, 한강의 시원입니다.

‘그 거대한 한강도 시작은 이 작은 못에 불과하구나. 삶이라는 그 끝없는 바람의 시작도 오랜 세월 거슬러 찾아가 보면 이토록 소박한 것이겠구나. 사는 동안 왜 그렇게 끝없이 불어 괴롭혔느냐고 따져 묻기라도 할 것처럼 한세월 찾아가 봤자 그 시작이 너무도 작고 미약해 끌어안아 다독여주고 싶을 정도로 여린 것이겠구나.’ 한강의 발원지 앞에서 또 한수 배우고 돌아옵니다.

검룡소는 1억5000만년 전 백악기에 만들어진 석회암 동굴 소로 명승 제73호로 지정됐습니다. 금대봉 기슭에서 솟구친 물이 지하로 흘러들었다가 이곳에서 솟아난 거지요. 고작 둘레 20여m의 작은 못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검룡소에서는 석회 암반을 뚫고 올라오는 지하수가 하루에 무려 2000∼3000t입니다. 물의 온도는 사계절 내내 9℃ 정도로, 한여름에도 시원한 기운이 흐르고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신비한 곳이지요.

이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정선군 임계면의 임계천과 합류하고 정선군 북면의 송천과 합류해 조양강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다시 오대천과 합류하고 영월의 동강·서강과 합류해 남한강이 되지요. 다시 달천강·섬강 등 여러 강들과 몸을 섞어가며 몸집을 불리다가 경기 양평군 양서면 두물머리에서는 북한강과 합류해 마침내 모든 이름을 버리고 ‘한강’이 됩니다. 검룡소의 작은 물줄기는 무려 514㎞의 여정을 거친 후 서해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잔잔한 평온을 얻습니다.

H. 당신의 오늘도 끝, 끝없는 바람 앞이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삶이 비록 ‘바람 앞의 등불’일지라도 그 바람의 시작을 떠올리며 살기로 합시다. 이제 서해 앞바다나 한강 둔치에 서면 그 광활한 풍경보다 이 조그만 못 하나가 떠오를 겁니다. 바람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삶이라면, 그 바람의 시원에 이르게 되는 날은 더이상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생이 다하는 날이겠지요.

H. 이곳 검룡소에 와서야 제게 불던 ‘끝, 끝없는 바람’이 비로소 즐거워졌습니다. 부디 당신도 그러시길. 이만 총총.


당신의 W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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