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호수 위에 떠 있는 龍 한마리, 옥천 부소담악

입력 : 2021-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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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부소담악은 700m 길이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져 있다. 마치 바위로 병풍을 쳐놓은 것 같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⑧ 충북 옥천 부소담악

대청호에 위치한 700m 길이 기암절벽

‘부소마을 앞 물가에 담긴 산’이라는 뜻

미르정원 언덕서 바라본 병풍바위 장관

우암 송시열 선생 ‘작은 금강산’으로 불러

 

친애하는 E에게


수몰지구(水沒地區)를 보신 적이 있나요. 1990년대 초반 우연히 경북 안동시 임하면을 지나다 한 마을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높디높은 산봉우리 두개를 연결한 다리 위를 지나는데 저 아래쪽 계곡 마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왠지 스산한 느낌이었어요. 물어보니 곧 물에 잠길 마을이랍니다. 그래서 물 위를 지날 다리도 높은 곳에 미리 만들어놓은 거고요. 물고기가 살지 않는 어항의 무섭도록 차가운 고요처럼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의 쓸쓸함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습니다.

수년 후 다시 찾을 기회가 있어 갔더니 마을은 이미 물에 잠긴 후였습니다. 1993년에 완공된 임하댐으로 인해 수몰된 것입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니 수면 위로 스산했던 마을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스치며 언뜻 본 게 다인 저도 이런데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오죽할까요. 잔잔한 수면 위로 어린시절 뛰놀았던 골목, 감을 따 먹던 감나무, 새 지저귀던 푸른색 지붕까지 생생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시인 정지용은 그래서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고 노래했나 봅니다. 그때 저는 ‘기억의 수몰’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보고 만지며 냄새 맡고 살아온 지난날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으니 내 지나온 삶은 모두가 수몰되었구나.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고, 눈앞에 선명하지만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지난날. 우리는 모두가 수몰민이었구나.

충북 옥천군 추소리에 있는 부소담악(芙沼潭岳)에 다녀왔습니다. 부소담악은 대청호 위에 마치 용이 스쳐가듯 두둥실 떠 있는 700m 길이의 기암절벽으로 ‘부소마을 앞 물가에 담긴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병풍처럼 펼쳐진 병풍바위가 압권입니다.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꽃이 만발한 마을길에 들어서면 장승공원이 있습니다. 곳곳에 서서 내려다보는 장승은 여행자들을 위해 주민들이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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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소정을 지나 이어지는 부소담악 산책길.

장승공원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조그만 정자 ‘추소정’이 보입니다. 추소리 마을 이름을 딴 정자지요. 정자에 오르면 시원한 대청호와 기암괴석의 부소담악이 펼쳐집니다. 이곳은 1980년 대청댐 완공으로 수몰된 지역입니다. 수몰되기 전 이곳에는 추동마을·부소마을·절골 등 세 마을이 있었지만 이 중 절골을 제외한 두개 마을 터는 물속에 잠기고 마을은 산 높은 곳으로 올라왔습니다. 추소리는 추동마을의 ‘추’와 부소마을의 ‘소’ 자를 가져와 붙인 이름이지요. 부소담악은 수몰되기 전 동네 앞산이었던 셈입니다. 수몰로 인해 마을주민들은 생활 터전과 비옥한 농토를 잃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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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담악 초입에 있는 추소정. 이곳에 오르면 부소담악을 내려다볼 수 있다.

부소담악의 산책길을 걷습니다. 그 속에 있으니 당연히 부소담악은 보이지 않을 수밖에요. 건너편에서 누군가 부소담악의 절경을 보며 탄식하고 있다면 저도 그 속의 한 풍경이 되겠지요.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거기서 나와 바라볼 때야 비로소 보입니다.

E, 늦었지만 이제야 당신께 고백합니다. 당신은 제가 카메라를 든 이유입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 언뜻 스치는 당신의 표정과 무심히 고개를 돌릴 때 스치고 떠나던 햇살의 궤적, 귓가의 긴 머리칼을 잠시 일렁이게 하다 사라지는 바람. 결코 당신은 볼 수 없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저는 늘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 가슴 출렁이게 하던 당신의 아름다움을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은 욕망이 저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게 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보는 삶을 택했습니다. 스스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숱한 아름다운 것들을 찍어 ‘네가 이렇게 아름다워’ 하며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부소담악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이곳을 벗어나려 합니다. 북서쪽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환산(고리산)에 올라도 되지만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배를 타기로 합니다. 30여년 전 귀농해 농사를 짓고 정원을 꾸미다 수년 전부터 여행자들을 위해 배편을 운영하는 이재홍 미르정원 대표의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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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부소담악을 돌면 장엄하게 펼쳐진 병풍바위를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배를 타고 반도의 삼면을 가까이서 보니 바위병풍은 하나의 바위가 아니라 편편히 갈라진 절리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날카롭게 솟은 칼바위와 그 사이를 뚫고 나온 할배소나무 등 수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자연의 신비로움 앞에 숙연해집니다. 이 돌산의 아름다움을 보고 우암 송시열 선생은 ‘작은 금강산’이라 예찬했다고 하니 더이상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배를 타고 다 돈 후 이 대표의 미르정원 언덕에 올라갑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700m의 병풍바위는 가히 절경입니다. 역시 아름다운 것은 멀찍이서 보아야 합니다. 대청호와 그 속에서 꿈틀대는 용의 형상 앞에서 세상사 다 내려놓습니다. 이곳을 떠나 다시 속세로 접어들면 이곳에서의 기억은 또다시 제게 수몰지구가 되겠지요. 이제는 제 삶에서 수몰돼버린 당신과의 아름다웠던 한 시절처럼 말입니다. 지난날, 눈앞에는 선명하지만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이만 총총.

당신의 W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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