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64)아버지

입력 : 2021-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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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유생 주갑 찾아온 스님

친부 부고와 유언 전하는데…

 

어느 겨울, 성균관에 노스님 한분이 찾아왔다. 찾는 사람은 젊은 유생 이주갑이다. “스님께서 어쩐 일로 이 먼 길을?” 주갑이 스님의 두손을 잡고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노스님을 쳐다봤다. 노스님이 주갑의 손에 이끌려 차방으로 들어가자 “놀라지 말게나. 자네 아버지가 보름 전에 돌아가셨네. 아직 장사도 치르지 못했어” 하고 말했다. 주갑이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주갑이 퇴청해 종로 뒷골목 조용한 술집에서 스님과 마주앉았다. “나 혼자 조용히 장사를 치러버리려 하다가 자네 모친과 상의한 후 이렇게 찾아왔네.” 막걸리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킨 스님이 얘기를 이어갔다.

“이십일년 전, 어느 초여름 아침에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나갔더니 삽짝 밖에 포대기에 싸인 아기 둘이 울고 있지 뭔가.” 한숨을 토했다. “내가 나오는 걸 보고 한 남자가 담 모퉁이를 돌아 안개 속으로 사라지더라고.” “여자가 아닌 남자가요?” “이번에 돌아가신 그분이야.” 또 한잔을 마셨다. “앙팔로 감싸 안은 쌍둥이가 자네와 영월 사또로 있는 자네 동생이고.”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동그랗게 뜬 주갑이도 가쁜 숨을 쉬다가 막걸리 한잔을 마른논에 물 대듯이 단숨에 마셨다.

“자네 둘을 키워주신 어머니, 윤 보살님도 자네 친모가 아니야.” “헉헉.” 주갑이는 숨이 차 또 막걸리 한사발을 마셨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요?” “벌써 돌아가셨네.” 노스님이 풀어놓은 얘기는 이렇다.

소백산 자락, 쓰러져가는 작은 암자에서 엄마를 찾으며 울어대는 쌍둥이를 받아 든 스님은 앞이 캄캄해 아랫동네 윤 보살을 불렀다. 윤 보살이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안아 집으로 갔다.

윤 보살은 대갓집에 시집갔다가 아이 못 낳는 석녀라며 시집에서 쫓겨날 때 한 재산 차고 나와 살림이 풍성했다. 쌍둥이들은 깐 밤처럼 예쁘고 영리했다. 다섯살 때 서당에 넣었더니 훈장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청솔암 스님이 윤 보살집을 자주 찾고 쌍둥이들은 틈만 나면 청솔암을 찾았다. 노스님이 산딸기도 따주고 으름다래도 따줬다. 쌍둥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윤 보살이 어머니인 줄만 알았다.

어느 가을날 쌍둥이가 암자에 갔더니 나무꾼이 장작을 패서 암자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산밤을 한보자기 주워 와 부엌 아궁이에 구워서 쌍둥이에게 건넸다. 별로 춥지도 않은데 나무꾼은 두눈만 빠끔히 내놓고 온 얼굴을 뜨개질 천으로 감쌌다. 조끼 주머니에 잘 익은 다래도 가득가득 넣어줬다. 한번은 그 복면 나무꾼이 윤 보살집에 장작을 넣는데 오동통 살이 찐 장끼 두마리를 갖다줘 장끼볶음을 오래도록 먹었다.

주갑이 주을이 형제는 반듯하게 자라 열일곱에 급제했다. 윤 보살집에서 잔치를 벌일 땐 고을 사또도 유지들과 함께 와서 축하했다. 그때 복면 나무꾼이 숨어서 그렇게 울었다. 그가 쌍둥이의 친부라는 걸 아는 사람은 노스님뿐이었다. 쌍둥이형 주갑이는 성균관에, 동생 주을이는 영월 사또가 되었다. 주갑이는 술에 취할수록 몽롱한 머릿속이 얽히고설켜 스님 얘기가 믿어지지 않았다. 이튿날 스님과 주갑이는 한양도성을 떠나 몇날 며칠을 걸어 영월 관아로 들어가 사또인 동생 주을이와 합류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주을이도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스님이 쌍둥이 형제에게 아버지 유언을 전하기를, 절대로 화장하지 말고 땅에 묻어달라는 그 한마디뿐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암자 밑 양지 바른 곳에 묫자리도 마련해놓았다고 말했다. 며칠을 걸어 세사람은 풍기에 가 윤 보살에게 인사하고 스님을 따라 복면 나무꾼이 살던 산속 토굴로 들어갔다.

토굴 출입문인 가마니 짝을 밀치고 들어가니 복면 나무꾼이 반듯이 누워 있었다. 쌍둥이는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스님이 갑자을축을 짚어보더니 삼일 후로 장례 날짜를 잡았다. 스님은 암자로 가고 쌍둥이는 키워주신 어머니 윤 보살집으로 갔다. 형제와 윤 보살은 술상을 놓고 둘러앉았다. 형제가 스님한테 들은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확인했더니 모두가 사실이었다. 복면 나무꾼이 쌍둥이 생부라는 건 윤 보살도 몰랐다. 쌍둥이 형제가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양도성에서 풍기까지 오가기에 너무 멀다는 데 함께 탄식했다. 이튿날 두형제는 십여리 떨어진 숲가마로 가서 생부의 시신을 그곳으로 모셔와 화장했다. 유골을 한지에 싸 오동나무 함에 넣어 짊어지고 윤 보살과 함께 스님에게 인사하러 갔다.

화장했다는 말을 들은 스님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가더니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형 주갑이의 뺨따귀를 철썩 후려갈겼다. 동생 주을이도 뺨을 맞고 꼬꾸라졌다. “야 이 자식들아. 네놈들이 장난치다가 등잔이 넘어져 집이 화마에 휩싸여 네 어미는 불에 타죽고 네 아비는 얼굴이 무섭도록 화상을 입었다. 그래서 한평생 복면을 한 채 살았고 밤마다 꿈속에서 화마에 시달려 제발 화장하지 말아달라고 유언했는데….” 스님의 지팡이가 부러졌다. 쌍둥이를 후려 패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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