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민선 중앙회장·조합장’ 탄생…‘할 말 하는’ 농정활동 펼쳐

입력 : 2021-05-03 00:00 수정 : 2021-05-23 09:41

[농협중앙회·농민신문 공동기획] 농협 60년을 넘어 100년으로

[1부] 연대기로 읽는 60년 ④ 1990년대 - ‘민주농협’ 꽃을 피우다

조합장 직선제로 중앙회장 선출 투표율 99.7% ‘민주화 열망’

정부에 농촌부흥세 신설 건의 농업·농촌 숙원사업 발굴 나서

신토불이 운동…열풍 이끌어

 

기·승·전·‘민주’. 1987년 6월 항쟁 이후 불기 시작한 민주화 바람은 1990년대의 대한민국을 관통한다. ‘위에서, 독단적으로’ 하던 시대가 저물고 ‘기층에서, 합의로’ 하는 변화가 일었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정부는 앞선 군사정권과 다르다는 의미로 ‘문민정부’를 표방했고, 1995년엔 도지사·시장·군수 등을 주민이 뽑는 지방자치제가 본격화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썼다. 농협도 이 시기 민선 중앙회장·조합장을 탄생시키며 민주농협의 서막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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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18일 전국 조합장이 농협중앙회장을 직접선거로 뽑기 위해 투표장에 모여 있는 모습. 농협 최초의 민선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이 선거는 99.7%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직선제 시대 활짝=1990년 4월18일, 농협은 바뀐 법에 따라 최초의 민선 중앙회장을 배출한다. 조합장의 직접투표로 실시된 중앙회장 선거에 전체 선거인 1470명 가운데 1465명이 참여한다. 99.7%의 투표율은 민주농협을 열망하는 기층의 의지가 반영된 탁본이었다.

후보로 나선 윤근환 전 농림수산부 장관, 반성우 전 농협중앙회 이사, 한호선 당시 중앙회장(임명직)의 공약도 농협 운영의 민주화 등 민주와 자율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다. 개표 결과 한 후보가 전체 투표수의 59.2%인 867표를 얻어 초대 민선 중앙회장을 맡는다. 임명직 회장 시대의 종언을 고한 순간이다.

중앙회장 직선제와 동시에 중앙회 임원 선출도 민주적으로 개선했다. 상임감사의 경우 농림수산부 장관이 임명하는 방식을 조합장 직선제로 바꿨다. 부회장·상임이사는 농림수산부 장관의 승인 아래 회장이 임명하는 대신 대의원회 동의를 얻도록 했다. 비상임 이·감사 역시 대의원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으로 개편해 조합원의 의사를 중앙회 운영에 십분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앞서 1989년 3월부터 1990년 3월까지는 전국 1469개 조합이 조합원 직선으로 조합장 선출을 마친다. 농협의 조합장 직선제는 1995년 지방자치제 전면화를 앞두고 실시돼 지방선거의 훈련장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조합장 선거로 다져진 민주 역량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착근에 기여했다는 점에서다.


◆할 말 하는 농협=한호선 중앙회장은 1990년 8월10일 농촌부흥세 신설을 정부에 건의한다. 이어 13일 농협 조합장들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안 거부 결의대회에서 농촌부흥세 신설 건의문을 채택, 후일 농어촌특별세(농특세) 도입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다. 임명제 시절의 농협은 정부에 큰소리나 쓴소리 한번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민주화 바람이 불고 직선제 회장이 등장하면서 농정활동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때 농협의 대정부·국회 건의는 ▲UR 협상 진전에 따른 우리 농업 보호와 쌀 개방 저지 ▲농업·농민 조세 부담 경감 등 농촌의 여론을 결집한 내용으로 사회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정부의 쌀 생산비 조사와 별도로 농가 대상 미곡판매원가를 조사, 추곡 수매에 관한 요구를 집요하게 전달해 정부를 곤혹스럽게 한다. 헌법재판소가 1991년 3월11일 조합장의 지방의회 진출을 막는 지방자치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런 농정활동의 산물이다.

2기 민주농협을 이끄는 원철희 중앙회장이 취임한 뒤 농협은 1995년부터 ‘농업·농촌 숙원사업’ 발굴에 나선다. 전체 계통사무소가 농민과의 대화를 통해 영농애로 개선사항을 담은 숙원사업을 매년 길어 올리는 식이다. 이렇게 발굴한 사업 과제는 정부와 국회로 전달돼 요긴한 정책자료로 쓰이거나 정당의 선거공약 작성에 참고할 지침서로 자리 잡는다.


◆농협이 처음 사용한 ‘신토불이’=1996년 우리말사전에 ‘신토불이’란 표현이 처음 등재된다. 당시 <민중 에센스사전>은 그 의미를 ‘사람의 육체와 그 사람이 태어난 고장의 토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농작물이 우리 체질에 맞다는 말’이라 설명했다.

신토불이는 농협이 우리농산물 애용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1989년 여름 어느 날, 서울 서대문 로터리 농협중앙회 본관 외벽에 ‘신토불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걸린다. 사전에도 없던 정체불명의 사자성어는 UR 협상에 따른 농산물 수입개방 흐름과 맞물려 신토불이 열풍을 만든다. 농협이 상표등록한 신토불이 브랜드를 도용한 상품이 쏟아지고 신토불이의 정확한 어원과 뜻을 묻는 전화가 쇄도한다. 이에 농협은 일본의 한 책에서 원용했던 신토불이의 연원과 의미를 밝히는 작업을 펼쳐 ‘우리 체질에는 우리농산물이 제일’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한다.

농협이 인기 방송극 <전원일기> 작가에게 특별 요청해 신토불이가 드라마 속 대화에 오르내리도록 했던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다. 무명가수 배일호는 1993년 4월 ‘신토불이’란 대중가요를 선보이며 스타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1990년대 숱한 농민집회의 대표 구호이자 대표곡이었던 신토불이는 우리농산물을 찾도록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신드롬으로 지금까지 기억된다.

홍경진 기자 hongkj@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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