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국민 건강과 농촌 경제 지키는 산나물

입력 : 2021-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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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나물은 식욕 돋우고 비타민·철분 등 무기물 풍부

산림자원 보호 규제 강화로 채취 어려워지고 재배 늘어

육종·효능 연구개발 나서야

 

봄이라지만 얼마 전만 해도 날이 춥고 어설프더니 청명·곡우를 지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앞산의 녹음이 짙어간다. 마당 가장자리의 목련과 라일락이 매화며 진달래꽃 자리를 대신한다.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의 묵은 가지를 전지하고 완두콩과 옥수수·호박도 심었다. 텃밭에 상추와 쑥갓의 씨앗을 뿌리고 고추와 고구마를 심을 밭 정리도 얼추 마쳤다. 못자리는 이웃에 부탁했고, 토마토와 오이·가지는 모종만 사다 심으면 된다. 분주한 가운데 잠시 허리를 펴고 산으로 나선다.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향채(香菜) 캐 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부는 무쳐 먹고 나머지는 엮어 다세. 낙화를 쓸고 앉아 병술을 즐길 때에 아내가 준비함이 가효(佳肴)가 이뿐이라(농가월령가 3월령).’

어린 시절 이맘때는 할머니를 따라 산나물을 뜯으러 온 산을 헤맸다. 취나물·다래순·고춧대·꿩의다리·누릿대…. 어쩌다 고사리·잔대·두릅이나 엄나무순을 찾으면 그리 좋아하셨다. 온 동네 사람들이 나물 뜯으러 나설 때이니 여간 험한 곳이 아니면 좋은 나물을 구하기 어려웠지만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와 망태기에서 눌러 담은 나물을 꺼내면 후끈하던 온기가 어제 일처럼 새롭다.

은퇴 후 시골에 와 살기를 잘했다고 느끼는 즐거운 일로 봄에 산나물 뜯기와 여름에 천렵, 가을에 도토리며 알밤 줍기, 그리고 겨울에 군불 땐 아랫목에 엎드려 책을 읽는 것이 있다. 도시에선 하기 힘든 체험이자 온 가족이 가난했지만 행복하게 살았던 기억 때문이리라.

그중에서도 봄에 뜯는 산나물은 겨울 동안 마른 시래기며 무·배추가 떨어질 무렵 쌉싸름한 맛과 진한 향으로 식욕을 돋우는 반찬이 되니 얼마나 좋은가! 산나물에는 여러 종류의 비타민과 철분·인·칼륨 등 무기물이 풍부하다. 또 보혈, 신경 안정, 거담·진해는 물론 만성기관지염과 폐질환·당뇨병·암 등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도 여럿이다. 자연에서 채취하니 친환경농산물이자 한방치료제인 것이다.

근래 산림 소유자의 동의 없이 불법으로 산나물과 산야초 등 임산물을 채취하는 사례가 늘면서 산림특별사법경찰, 산림보호지원단 등을 통한 단속이 강화됐다. 즉 산림자원과 산촌주민들의 소득원을 보호하기 위해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3조에 따라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그리고 단속기간 입산통제구역에 들어가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어 외지인이 함부로 채취하기 어렵게 됐다.

시골로 내려온 이듬해부터 밤나무가 있던 야산에 오가피며 두릅과 엄나무를 심고, 한 귀퉁이를 일궈 산나물밭을 만들었다. 굳이 산나물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할머니와 함께했던 추억과 거친 나물밥을 먹으면서도 뜻을 지키는 소박한 생활을 실천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근에 흔한 취나물과 땅두릅 외에 곰취·당귀·참나물·부지깽이나물·눈개승마·산부추 등 진귀한 모종은 지인들로부터 구해 심었다.

그리고 삼년을 가꾸어 올해는 제법 수확을 해서 끼니마다 데쳐 초장에 찍어 먹거나 삶아 무치고, 어떤 것들은 튀겨서도 먹는데 어머니가 여간 좋아하시지 않는다. 자급 기반을 마련해 남의 눈치를 살피며 험한 산을 오르지 않고도 보기 힘든 귀한 산나물을 채소처럼 수확하다니 새삼 농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그까짓 산나물이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뜻도 있다. 정극인은 ‘상춘곡(賞春曲)’에서 ‘홍진(紅塵)에 묻힌 분네 나의 생활 어떠한가, 세상의 남자로 나만 한 사람 많지만, 산림에 묻혀 사는 맛을 아는 이 누구인가. (중략) 아침에 산나물 캐고 저녁에 낚시하세. (중략) 공명도 부귀도 모두가 날 꺼리니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으리오. 단표누항에 허튼 생각 아니하니, 백년행락이 이만하면 어떠한가’라고 읊었다. 그뿐이랴. 공자조차도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 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 뜬구름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요즘 산나물 재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산나물 육종과 재배, 요리방법, 효능에 관한 연구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지나친 산지 이용 규제를 합리화해서 건강지킴이이자 소득원,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봄날의 깜짝 선물이 되면 좋겠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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