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농협중앙회장 직선 ‘민주화 한발짝’…산지조직 정비 ‘유통 날갯짓’

입력 : 2021-04-23 00:00 수정 : 2021-05-23 09:40

[농협중앙회·농민신문 공동기획] 농협 60년을 넘어 100년으로

[1부] 연대기로 읽는 60년 ③ 1980년대 - 줄기를 두텁게 하다

단위조합 중심으로 체제 재편 계통조직 단계 축소로 내실화 

과일·채소 23개 품목 표준 마련 농산물 규격·등급화 선도 주목

모든 금융점포에 통합 CI 도입 전산망 구축 등 디지털화 준비

 

1987년 10월14일, 전국 농협 조합장 22명이 유력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 민정당 총재와 마주 앉는다. 안건은 추곡수매값 결정. 당시는 정부가 가을에 수확한 쌀 가격을 정해 수매하던 시절이다. 조합장들은 추곡수매값이 전년보다 7∼8%만 오를 것이란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정치권을 찾아 두자릿수 인상을 요구한다. 이보다 한달 앞선 1987년 9월, 농협은 설립 이래 최초로 정부에 추곡수매값 적정 인상률을 공개적으로 건의한 터였다. 농협은 18.6% 인상을 요구해, 최종 ‘14% 인상’이라는 성과를 올린다. 1980년대 경제·신용 사업의 성장을 바탕으로 농협은 농업·농촌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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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농협조합장·교수 등이 참여하는 정부 양곡유통위원회가 출범, 추곡·하곡(쌀·보리) 수매값을 심의해 정부에 건의했다. 1989년 7월 경북 경주의 하곡 수매현장을 찾은 양곡유통위원들이 농민들과 수매값 등의 여론을 수렴하고 있다.


◆민주농협 성큼=1980년대 농협은 단위조합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민주농협을 향한 발걸음을 한발씩 내딛는다.

먼저 농협 계통조직을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여 내실을 키운다. ‘단위조합-시·군 조합-중앙회’ 체제에서 ‘단위조합-중앙회’ 체제로 재편한 것이다. 1970년대부터 단위조합의 조직과 역량이 커지며 시·군 조합과의 기능 중복문제가 불거진 데 따른 조치였다. 시·군 조합이 운영하던 농산물 생산·판매 시설이 모두 단위조합에 이관되고, 도지부와 시·군 조합의 명칭은 각각 도지회와 시·군 지부로 바뀐다.

민주농협의 기운도 싹튼다. 1980년 12월30일 ‘농업협동조합임원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이하 임시조치법)’ 개정이 결정적인 계기다. 종합농협이 발족한 무렵인 1962년 임시조치법이 제정되며 조합장은 줄곧 농협중앙회장이 주무부처 장관의 승인을 받아 임명했다. 임시조치법 개정으로 승인제도가 폐지되며 중앙회장이 온전하게 조합장을 임명하게 된다.

1988년 12월31일 개정 농협법 공포를 계기로 농협은 민주화에 한발짝 더 다가선다. 임시조치법이 폐지되며 농협 설립 약 26년 만에 중앙회장과 조합장 직선제가 전격 도입된다.


◆산지유통 도약=농협은 산지·소비지 조직을 재정비해 합리적인 가격에 상품성이 뛰어난 농산물을 본격 공급한다.

우선 산지유통 조직부터 대폭 늘었다. 농협은 1984년 작목반·자생출하조직 등의 산지 출하조직 중 역량이 뛰어난 4500곳을 선정해 ‘협동출하반’으로 집중 육성한다. 선도자금을 지원하고 도매시장 공판장 출하수수료 환원 등의 혜택을 주며 산지를 빠르게 규합한다. 1990년 협동출하반은 1만2425개에 달했다.

농협이 농산물 규격화·등급화를 선도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86∼1988년 과일·채소 23개 품목에 표준규격을 마련한 것. 농산물의 표준거래단위와 규격화된 포장을 도입함으로써 농산물도 ‘상품’이라는 인식을 만든다. 생산자의 소득 증대와 국내 농산물유통 근대화를 이끈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영농자재사업 중에선 비료가 큰 변화를 맞았다. 정부가 비료 구매·판매 가격을 정하는 제도가 폐지되고, 1988년부터 농협이 직접 비료 수급계획을 세우는 자유판매제가 도입되면서다. 농협은 저인산복비·4종복비·완효성비료 등 100여종 이상으로 선택지를 넓히며 농가의 만족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또 농업용 석유에 대한 면세제도(1986년)가 도입돼 연간 1조원의 농가경영비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이밖에 1981년 1월 축협중앙회가 발족한다. 농협중앙회에 가입된 축산계 조합 100곳과 축산진흥회가 결합하면서다. 축협중앙회는 출범 후 축산기반 구축과 지역 협동조직 육성에 힘쓰다 2000년 7월 농협중앙회에 재통합된다.


◆온라인 시대 채비=신용사업에도 변화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경제성장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금융시장이 대폭 개방되며 은행 설립과 점포 수가 모두 늘어난 영향이다. 농협금융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확충을 통해 변화에 빠르게 발맞춘다. 1983년 농협중앙회 모든 금융점포에 ‘통합 기업이미지(CI)’를 도입해 농협의 색깔을 입혀나간다.

농협이 신용카드시장에 진출(1983년)하며 농촌 신용사회 구축에 앞장선 것도 이맘때다.

상호금융도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다. 1983년 ‘상호금융 발전계획’을 통해 1986년말까지 예수금 4조원을 목표로 전사적인 역량을 모은다. 농어가목돈마련저축 법제화(1986년)에 따라 예수금 추진도 탄력을 받는다. 그해 상호금융예수금은 3조5222억원으로 중앙회예수금(3조2074억원)을 넘어선다.

농협 디지털 혁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전산화’도 이 시기 첫발을 뗀다. 1982년 ‘제1차 농협업무전산화 추진 3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제2차 전산화 추진계획(1986년)’이 연이어 추진된다. 1988년부터 단위조합에도 온라인시스템이 본격 도입돼 신용사업 및 양곡·비료 등의 경제사업에 전산망이 구축되며 다가올 디지털 시대를 맞이할 채비를 마친다.

김해대 기자 hda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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