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봄날 문득 그리워지는 그대

입력 : 2021-04-09 00:00

시인은 어떤 시를 읽을까요. 감성적인 글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병률 시인과 맑고 간결한 시어로 세상을 통찰하는 이문재 시인(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이 매주 한편의 시를 읽어드립니다.



봄날이 다시 돌아왔으나 우리는 이제껏 일년 넘도록 아픕니다. 우리는 헤어나지 못하였고, 그것조차도 근원의 문제였다는 사실에 휘청합니다. 봄날이니, 문을 닫아버린 것 같은 땅이 열리고 꽃들이 줄줄이 피고 있으니 어지러워도 되겠습니다. 이사를 며칠 혼자서 한 사람처럼 마음껏 앓아도 좋겠다 싶은 봄날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그곳은 여기처럼 봄이 아닐런가요. 인생을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그때는… 이라는 가정은 영 재미없으니, 이번 생에서는 그냥 미끄러지는 수밖에요.

홍경희 시인은 제주에서 태어나 살면서 4.3사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를 많이 써왔습니다. 이 시는 어떤 영혼과의 감각적 조우를 통해 내 안에 겹쳐져 머무는 근원적이며 운명적인 어떤 존재에게 뜨겁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이 내 몸에 다녀가는 바람에, 그래서 내가 잠시 허둥댔으며, 그리고 그렇게 아픈 이후 내가 많이 괜찮아졌다는 것을 이제 알립니다. 당신은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다녀갔으니 이제 손님이 아니라 당신이겠지요. 당신이 내 몸에 다녀갔다면 당신이 다녀가지 않은 내 몸은 그저 몸일 뿐이겠지요. 그러니 이제 당신은 영원한 것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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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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