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59) 추노

입력 : 2021-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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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대감집서 도망친 열여섯살 옥주

애꾸 추노꾼 변 처사가 쫓아가는데…

 

삼년 전, 민 대감이 명월관에서 천하일색 동기(童妓) 옥주의 머리를 올려주고 서촌에 아담한 기와집을 사서 그녀를 들어앉혔다. 저녁에 명월관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민 대감은 임금이 주관하는 궁중연회에도 고뿔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퇴청해 서촌으로 달려가 옥주를 껴안았다. 열여섯살 옥주는 여자로서 아직 무르익지 않아 민 대감이 치마를 벗길 때마다 애를 먹었다. 그것이 오히려 민 대감을 미치게 했다. 옥주가 자주 흘리는 눈물도 민 대감의 혼을 뺐다. 친정어머니 병문안 다녀오겠다던 옥주가 열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집사를 보냈더니 친정 주소가 가짜였다. 도망을 간 것이다. 함께 도망간 놈은 옥주가 권번에 팔려가기 전 혼례를 올리기로 약속한 한동네 총각이었다. 열흘의 초동수사가 무산돼 백방으로 찾았으나 허사였다. 삼년 전의 일이다.

일전에 믿을 만한 제보자가 민 대감을 찾아왔다. 풍기장터 한의원에 산삼을 팔려고 온 젊은 가시버시가 옥주 일행 같다는 정보였다. 그렇다면 소백산 속에서 연놈이 심마니로 살아간다는 얘기다. 이름난 추노(推奴)꾼을 구해 집의 하인 둘을 딸려 보냈다. 애꾸 추노꾼 변 처사와 하인 둘이서 삼일째 되는 날 영월 주막에 묵게 됐다. 남아 있는 객방이 하나밖에 없어 셋이서 같은 방을 썼다. “처사 어른, 약주 한잔 올릴까요?” 하인이 묻자 변 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 대감이 애꾸처사를 잘 모시라고 하인에게 노자를 넉넉히 줘 청주에 너비아니를 두근이나 시켰다.

애꾸처사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던 하인 둘이 술기운을 빌려 “처사 어른, 뭐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하자 뭔가 생각하던 애꾸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노를 하신 지 몇년이나 되셨습니까요?” “한 이십년쯤 됐지.” “몇이나 잡으셨어요?” 벽에 기대어 한참 생각하더니 “모르겠네” 하고 고개를 저었다. “혹시 사람도 죽이신 적이?” 하인이 말끝을 흐리자 애꾸처사가 서슴없이 “열세명”이라고 답했다. 하인 두녀석은 “허억” 하고 뒤로 물러앉아 사지가 뻣뻣해졌다. 애꾸처사가 벌떡 일어나 주막 마당에 나가서 머리 위로 획획 발차기를 하고 공중제비를 돌더니 객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잠들었다.

먼동이 트자 주막을 나와 남쪽으로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인 두녀석은 애꾸 걸음을 따라가느라 항상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똑바로 소백산 속으로 스며들었다. 겨우내 쌓였던 눈 녹은 물이 콸콸 계곡에 넘쳐나고 진달래가 온 산을 덮었다. 그때 숲속에서 “애∼ 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애꾸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하인들이 헐레벌떡 뒤따라갔더니 덩치가 황소만 한 사냥꾼과 애꾸 변 처사가 올무에 묶인 어미 사슴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저만치 거리를 두고 사슴 새끼 두마리가 “애∼ 애∼” 울고 있었다. “사냥에도 도(道)가 있는 법이오. 새끼를 배거나 젖먹이 새끼가 딸린 짐승은 사냥하는 법이 아니오.” 애꾸가 꾸짖었다. “네놈이 뭔데 이래라저래라 지랄이야.” 사냥꾼이 대뜸 목청을 높이며 애꾸의 멱살을 한손으로 잡아 올리더니 땅바닥에 패대기칠 기세라 하인 둘이 지팡이를 치켜들고 돌진을 하려는데 “으아∼악” 사냥꾼이 꼬꾸라져 사타구니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애꾸 변 처사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어미 사슴의 발을 조인 올무를 풀어주자 어미가 새끼 두마리를 데리고 숲속으로 사라지며 몇번이나 뒤돌아봤다. 그때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냥꾼에게 애꾸는 “네놈의 터진 불알이 아물 때까지 한 일년 동안 마누라 곁에도 못 갈 것이여∼ 킬킬킬” 하고 말했다. 애꾸가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하인 둘이 어안이 벙벙해져 입만 벌리고 있는데 애꾸는 벌써 숲속으로 사라졌다. 비박을 하며 소백산을 헤집고 다니던 세사람은 열이틀 만에 토끼길을 발견, 마침내 숲속에 숨어 있던 오두막 너와집을 찾아냈다.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나절, 너와집에는 모락모락 저녁연기 피어오르고 약초 망태를 멘 신랑이 손바닥만 한 마당에 들어서자 부엌에서 애기를 업은 옥주가 나왔다. 신랑이 애기를 뽑아 안고 ‘까꿍’ 하자 옥주는 부엌에 들어가 저녁상을 들고나왔다. “돌아가세.” 멀찌감치 숨어서 지켜보던 애꾸가 발길을 돌렸다. 애꾸를 따라 밤길을 하산하며 하인 둘은 흐느꼈다. “왜 울어?” 앞서가던 애꾸가 뒤돌아서서 묻자 “처사 어른, 훌륭하십니다. 으흐흑” 하곤 감격에 겨워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애꾸는 “별 싱거운 사람들” 한마디 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단양 주막집에서 술상을 두고 세사람이 마주 앉았다. 하인 둘은 이제는 더이상 애꾸 변 처사가 무섭지 않았다. 하인 하나가 물었다. “처사 어르신 손에 열세사람이 죽었다는 게 진짜예요?” 술 한잔을 마신 애꾸가 말했다. “죽어 마땅한 놈들을 죽였어. 어린 신랑을 죽이고 통정하던 신부와 도망친 중놈, 남편을 독살하고 함께 도망친 행랑아범….”

며칠 후 한양에 입성해 민 대감과 마주 앉은 애꾸가 “죄송합니다. 낫을 들고 달려드는 남자 놈을 처단하여 눈 녹은 물이 넘쳐흐르는 소백산 희방폭포에 처박아 넣었더니 옥주도 손 쓸 사이 없이 폭포에 몸을 던졌습니다” 하고 말했다. 민 대감은 애꾸를 보내고 나서 하인 둘을 불러 물었다. 애꾸와 똑같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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