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로 보는 농협] “중앙농협 개척원 되고파” 수천명 응시

입력 : 2021-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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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60년을 넘어 100년으로] 기사로 보는 농협

농민조합원 이념 교육 등

농촌 협동조합 산파 역할

 

‘중앙농협 현지개척원 공개경쟁시험 합격자 발표 일주일 지나도 감감무소식.’

1963년 2월8일자 <동아일보> 3면엔 농협의 ‘현지개척원’ 시험 결과 발표가 늦어져 불만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농협중앙회 인사과는 같은 신문 12일자에 이에 대한 해명자료를 이렇게 싣는다.

“응시자수가 전국적으로 8000명에 달하는 이번 시험은 주관식과 객관식의 혼합으로서 시험지가 3만장에 달하여 관련 작업이 단시간에 완료될 수 없다는 것을….”

수천명이 응시하고, 합격자 발표 자체가 뉴스가 된 ‘개척원’은 1960년대 농협운동의 상징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개척원은 1961년 처음으로 채용돼 농촌지역 면(面) 단위를 무대로 농민조합원을 계몽하는 임무로 출발한다. 산골짜기 곳곳 농민을 찾아가 협동조합 이념교육, 이동조합 사업 지도, 잡지 <새농민> 보급 등의 역할을 묵묵히 해낸다.

<농민신문>은 1967년 6월 ‘개척원제도 그 문제점’ 기획(사진)을 1면에 3회에 걸쳐 보도하며 개척원의 역할 정립, 처우 개선 등을 끊임없이 논의하기도 했다. 1970년 농협 직원으로 전환되며 임무를 마치기까지 개척원은 농촌 협동조합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밖에 농협대학교 개교도 1960년대 신문이 주목한 농협 뉴스였다. 농협대는 1962년 재단법인 건국대학원이 설립해 운영하던 농협초급대학을 농협중앙회가 1966년 5월 인수해 문을 열었다. 1967년 10월7일자 <농민신문>은 ‘농민의 대학, 농협대학’이라는 제목 아래 농협대 설립의 취지와 열띤 강의 현장을 르포 기사로 전했다. 기사 첫 줄은 “한마디로 농협대학은 농협교육의 본산이며 농협적 ‘엘리뜨’의 산실이다”로 시작해 개교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김해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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