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종합농협 첫발…농가경영주 90% 222만명 조합원 가입

입력 : 2021-04-02 00:00

[농협중앙회·농민신문 공동기획] 농협 60년을 넘어 100년으로

[1부] 연대기로 읽는 60년 ① 1960년대 - 협동의 씨앗을 뿌리다

 

‘협동조합을 재편성하여 농촌경제를 향상시킨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정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경제재건계획안에서 제시한 과제다. 전 국민이 배불리 먹는 게 최우선 숙제이던 시절, 농촌경제 향상을 이끌 핵심 주체로 협동조합이 꼽힌 것이다. 1945년 광복 이후 신용사업에 편중된 농업은행과 조합원 지도 중심이던 구(舊)농협의 통합이 급물살을 타며 현재의 ‘종합농협’ 기틀이 마련된다. 전국 방방곡곡 약 2만개 이동(里洞)조합으로 이뤄진 종합농협은 각종 사업의 씨앗을 뿌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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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15일 농업은행과 구(舊)농협이 통합해 종합농협이 첫발을 뗐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간판을 달기 위해 농업은행 간판을 내리고 있다.

농업은행·구농협 통합 출범 이동조합 2만1042개 참여

하나로마트 뿌리 연쇄점 첫선 농산물 공판사업도 닻 올려

상호금융 시작…대출이자 뚝

 

◆종합농협, 출범하다=종합농협은 농산물 판매 등의 경제사업과 자금 대출 등의 신용사업을 아우르는 농협을 말한다. 전국의 농민과 농촌을 그물망처럼 잇는 역할이 막중함에도 1945년 광복 후 농업 협동조합 설립은 이렇다 할 매듭을 짓지 못했다.

일제강점기말, 우리나라 민간 협동조합들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대부분 강제 해산되고 일제의 농업 행정보조 노릇을 한 ‘조선농회’만 겨우 남는다. 광복 후 농민 주도의 협동조합 발족 움직임이 있었지만 ‘자생’을 기반으로 한 상향식이냐 아니면 ‘입법’을 근거로 한 하향식이냐를 놓고 미군정 기간 논란만 이어졌다.

변곡점은 1956년 이승만정부의 주식회사 농업은행 설립이다. 정부의 농업자금 공급을 위해 급히 조직된 농업은행은 특별법이 아닌 한국은행법에 근거해 세워진다. 농업은행이 출범하며 국회 농림위원회도 농협법 입법에 속도를 냈다. 1957년 ‘농업협동조합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1958년 5월 구농협이 세워진다. 그러나 신용사업 배제, 사업체계 미비 등의 한계로 구농협은 경영 부진을 면치 못한다.

종합농협의 발족이 한국농협 발전의 전환점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1961년 7월 새 농협법이 공포되고 8월15일 농협중앙회가 창립된다. 구농협과 농업은행의 자산과 인력을 흡수하면서다. 기존 두 조직의 자산은 농민이 이동조합에 출자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동조합은 시·군 조합에 출자, 시·군 조합은 다시 중앙회에 출자하는 조합원의 소유체계가 구축된다. 이동조합 2만1042개, 시·군 조합 140개 등이 참여했다. 1962년말 전체 농가경영주의 90%인 약 222만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한다.


◆경제사업, 기틀 닦다=종합농협 발족 당시 이동조합들은 조합원이 100명 안팎일 정도로 규모가 영세했다. 1965년 1월 시·군 조합으로부터 정부의 비료·농약과 농사자금 공급사업을 이관받으며 도약의 발판을 다진다.

특히 농협 ‘하나로마트’의 뿌리인 ‘연쇄점’이 1960년대말에 첫발을 뗀다. 이전에도 일부 이동조합이 생활용품을 자체 구매해 구판장에서 공급했지만 규모는 영세했고, 가격 경쟁력은 떨어졌다. 1969년 10월 농협중앙회가 ‘이동조합 구판장 혁신계획’을 세워 생필품을 일괄 구입, 연쇄점을 통해 공급한다는 구상을 내놓는다. 1970년 경기 이천 장호원농협의 1호 연쇄점을 시작으로 그해만 255개 연쇄점이 문을 연다. 연쇄점이 조합장들의 필수 견학 코스로 꼽혔을 정도다. 당시 연쇄점 소매가는 시중가보다 평균 15% 낮아 농촌 소비물자 유통 혁신의 기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농협 농산물 공판사업도 1960년대에 닻을 올린다. 1961년 4월 부산농산물공판장을 시작으로, 1962년 서울·대구·대전·광주에 농협공판장이 들어선다. 개장 초기는 공판장사업에 대한 농민의 인식이 부족해 농협 계통출하가 저조했지만, 1970년대 이동조합을 통합한 단위농협 출범이 본격화하면서 취급 물량이 늘며 농산물도매시장의 기능을 맡는다.

농협이 왕골로 만든 슬리퍼를 미국 하와이에 처음 수출(1966년)하고, 경기 부천·안성의 원예조합 등이 복숭아·포도·김치 통조림으로 가공사업에 진출한 것도 이 무렵이다.


◆상호금융, 씨 뿌리다=조합원 상호간에 자금을 융통하는 ‘상호금융’이 시작된 것도 1960년대다.

상호금융 이전의 농촌에서는 농협 시·군 조합과 이동조합, 마을금고가 금융기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군 조합은 사무소 개수 자체가 적고, 이동조합은 시·군 조합의 대출을 알선하는 제한된 신용사업에만 머물렀다.

농민들은 농촌대금업자나 계 등의 사채를 통해 자금을 융통했다. 당시 사채금리는 연 60% 수준. 연 3.5∼18.5%였던 금융기관 금리를 훌쩍 넘었다.

이런 상황을 풀고자 1969년 150개 이동조합이 연합해 상호금융을 처음 시작한다. 조합원 대상으로 직접 금융사업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농촌지역의 여유자금과 사채자금을 저축으로 흡수하고자 예금이자는 높게(40%), 대출이자는 낮게(28%) 잡았다. 손실은 농협중앙회가 저리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보전했다. 1974년 전국 단위농협의 99.5%인 1537개 농협이 상호금융을 도입한다. 1969년말 3억원에 불과하던 상호금융예수금은 1976년말 1559억원에 달할 정도로 탄탄히 뿌리를 내린다.

김해대 기자 hda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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