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아제아제 바라아제, 죽음에서 삶을 보다 ‘천관산 동백숲’

입력 : 2021-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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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동백숲 탐방로에서는 송이째 떨어진 동백꽃들이 붉은 융단처럼 깔린 모습을 볼 수 있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④ 전남 장흥 천관산 동백숲

겨울에 피어 봄에 절정 맞는 꽃 질 때도 온전히 한몸으로 ‘툭툭’

2만그루 자생 국내 최대 군락지 1239m 탐방로는 온통 붉은빛

동박새·직박구리 소린 활기찬데 떨어진 꽃송이 왜 그리 처연할까

 

친애하는 J에게


‘내 머리가 곱슬어진 데에는 / 그럴 만한 / 전설이 있다.’

혹시 이런 시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없으실 겁니다. 왜냐면 아직 제가 발표하지 않았거든요. ㅋㅋ. 어린 시절, 바람에 흩날리는 사람들의 고운 머릿결이 부러워 지은 시의 첫 구절입니다. 곱슬머리인 게 유년시절부터 슬펐습니다. 하지만 제 머리가 곱슬한 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어요. 지금까지도 그 전설을 찾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저의 ‘곱슬머리’같이 아픈 무언가가 있겠지요. 하지만 슬퍼 마세요. 거기에도 분명 ‘그럴 만한 전설’이 있을 겁니다.

외람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나이가 아니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에는 와닿지 않는 것. ‘다 때가 있다’거나 ‘철모르고 하는 짓’ 같은 이야기 말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흔하디흔한 말들이 사무치게 와닿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땐 동백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두껍고 뭉툭하고 짙은 녹색 이파리, 투박한 모습의 꽃. 왜 어른들이 동백꽃을 아름답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백 때문에 울컥했던 건 얼마 전에 들은 가수 송창식의 멘트 때문이었습니다. 한 공연장에서 송창식이 ‘선운사’라는 노래를 부르기 전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동백꽃 필 때 선운사에 한번 가보세요. 그거 괜히 눈물 나요”라고 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동백꽃을 본 것도 아닌데 왜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을까요. 그 붉은 처연함과 송이째 ‘툭’ 떨어지는 동백꽃의 슬픔을 이해할 나이가 돼서였을까요.

전남 장흥의 천관산 동백숲에 다녀왔습니다.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 동백나무 군락지입니다. 수령 50∼200년에 달하는 동백나무 2만여그루가 20만㎡(약 6만500평)의 계곡에 자생하고 있습니다. 천관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827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칠관로’라고 적힌 이정표에서 좌회전해 좁은 임도를 따라가다보면 조그만 정자, ‘동백정’이 나옵니다. 그 아래 펼쳐진 계곡이 동백숲입니다.

동백정에 가기 전 임도에 들어서면 반드시 자동차 창문을 열어놓으세요. 어느 순간 끊임없이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겁니다. 차를 세우고 새소리로 가득 찬 계곡숲을 내려다보세요. 수만그루의 동백나무들이 계곡으로 흐르는 바람에, 일제히 각자의 시간으로 흔들려요. 그 광활한 흔들림에 놀라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힙니다. 수만그루 나무에 선명하게 박힌 수백만송이의 붉은 동백꽃들! 아, 가히 동백으로 물든 붉은 노을입니다. 태어나 그렇게 끝없는 동백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꽃을 보며 이렇게 심장이 요동친 적도 없었습니다. 한동안 새소리로 가득 찬 붉은 노을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숲속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보여드리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지만 미천한 재주로 그 광활한 숲의 붉은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동백나무는 겨울이 따뜻한 남쪽에서 주로 자랍니다. 거기다 절 부근에 숲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요. 전북 고창 선운사, 전남 강진 백련사와 진도 쌍계사 등 규모는 다르지만 많은 절이 동백숲을 갖고 있습니다. 잎이 두꺼운 데다 상록수라 산불이 났을 때 불이 잘 옮겨붙지 않아서예요. 일종의 방화수(防火樹)입니다. 거기에 동백기름은 등유로 불을 밝히고 남은 것은 내다 팔 수 있으니 일석삼조입니다.

동백나무는 12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에 꽃을 피웁니다. 이 중 3월에서 4월이 절정입니다. 붉고 커다란 꽃이 피고 지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은 동백꽃의 생존 전략입니다. 너도나도 꽃을 피우는 봄을 피해 겨울을 택한 거지요. 벌도 나비도 없는 겨울의 꽃가루받이를 위해 동백꽃은 동박새를 불러들였습니다. 큰 꽃에 많은 양의 꿀을 만들어 꽃통 아래 저장하지요. 동박새가 이 꿀을 먹기 위해 부리를 대면 깃털과 부리에 꽃밥이 잔뜩 묻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옮겨 다녀요. 동백을 만나기도 전에 왜 그렇게 새소리부터 요란했는지 이제는 아시겠지요. 이곳에서는 동박새를 비롯해 어치, 직박구리 등 다양한 새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이제 동백정 아래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1239m의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어 걷기에 불편함이 없어요. 여기저기 송이째 떨어진 동백꽃이 즐비합니다.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번, 땅에서 한번, 두번의 꽃을 피운다지만 그렇지 않아요. 후박나무에 떨어지면 후박꽃, 붉가시나무에 앉으면 붉가시꽃, 계곡에 떨어지면 물꽃으로 수도 없이 다시 피어납니다. 숲속 길은 온통 동백꽃으로 깐 붉은 융단입니다. 검붉은 피로 얼룩진 꽃길. 바람이 불면 여기저기서 툭, 툭 떨어지며 동백꽃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듯 무심히 옮아갑니다. 이 찬란한 저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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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의 전남 장흥 천관산 동백숲.

동백꽃은 왜 꽃잎으로 흩날리지 않고 목숨인 듯 꽃째로 떨어지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저는 이 처연한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 처연함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아직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 슬픈 이유를 알게 될 때쯤이면 왜 제가 곱슬머리인지 그 전설도 찾을 수 있을까요. 미완의 시를 완성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저승길에서 동백꽃은 말합니다.

‘넌 아직 멀었어. 더 살아.’

부끄러워 발길을 옮깁니다. 시인 송찬호의 시 ‘동백이 활짝’의 마지막 구절처럼요.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 물고 /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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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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