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여행] 성곽길에서 생각하다…안과 밖, 우린 그 어디쯤일까

입력 : 2021-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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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읍성의 동문(등양루)에 설치된 옹성.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쌓이고 수백년을 견뎌온 성곽의 돌에는 세월의 흔적이 올곧게 새겨져 있다.

[김도웅 기자의 감성여행] ③ 전북 ‘고창읍성’ 

 

조선 단종 원년에 축조 

옹성·치성·해자 갖추고 ‘밖’으로부터 ‘안’ 지키는 역할 

4년에 한번 윤 3월 극락왕생 기원 북문 들고 나는 ‘성돌이’ 풍습에선 안과 밖·생과 사 경계 허물어

경계선은 공간을 두개로 나누지만 세상은 원래 하나였음을 잊지 말길

 

친애하는 J에게


종이 위에 조그마한 아이 하나를 그려요. 그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착하고 예쁩니다. 그러고는 그 아이를 가운데 두고 동그라미 하나를 그립니다. 아이가 원래 있던 곳은 ‘안’도 ‘밖’도 아니었지만 원을 그리는 순간, 아이가 있는 곳은 바로 내가 있는 곳, ‘안’이 됐습니다. 이제 그 아이의 이름은 ‘우리’가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종이에 아이 하나를 그려요. 이번에는 아이를 두고 옆에다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이 아이도 원래 있던 곳은 안도 밖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밖’에 있는 아이가 됐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우리’에 속하지 않는 ‘그’입니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고창읍성에 다녀왔습니다. 성이라는 것은 ‘안’과 ‘밖’,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요. 눈치채셨겠지만 성곽은 바로 ‘동그라미’이며 이 동그라미는 우리를 지키고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고창은 백제 시절 ‘모량부리현’ 또는 ‘모양현’으로 불려 고창읍성을 ‘모양성’이라고도 부릅니다.

조선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들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했다는 설도 있지만, 고창군은 조선 단종 원년인 1453년에 지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조선시대 지방 방위조직인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읍성입니다. 호국을 위한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어요. 1965년 사적 제145호로 지정됐으며,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는 4∼6m, 면적은 16만5858㎡(약 5만172평)입니다.

산으로 막혀 있는 남쪽을 제외한 동·서·북쪽에 각각 문이 있으며 이 세개의 문 앞에는 돌로 된 옹성(甕城)이 설치돼 있습니다. 옹성이란 성문 앞에 설치되는 시설물로, 항아리처럼 한쪽이 개방된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 붙은 이름입니다. 옹성에서는 성문을 공격하거나 부수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적의 수가 많더라도 옹성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적들이 성문을 부수기 위해서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통나무를 뒤에서부터 들고 달려와 가속을 붙여야 하는데 가속을 낼 만한 공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성문 보호를 위해서라면 필수적인 시설입니다.

또 6개의 치성(雉城)을 만들고 성 밖에는 해자(垓子)를 설치하는 등 전략적 요충시설을 두루 갖췄습니다. 치성이란 성곽 한쪽 면에서 바깥쪽으로 볼록하게 요철 형태의 성곽을 달아낸 것입니다. 테라스를 연상하시면 쉬울 듯합니다. 이곳에 올라 적이 오는지 동태를 살피지요. 해자는 성 바깥쪽으로 빙 둘러서 만든 연못입니다.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지요. 해자 바깥으로는 자갈을 깝니다. 적이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함이지요. 영화에서 본 모든 장치들이 설치돼 있습니다.

이 읍성은 평화로운 시절 유비무환의 슬기로 지어졌습니다. 성 안쪽으로는 동헌·객사 등 22동의 관아 건물과 2지(池) 4천(川)이 있었지만 불이 나 모두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북문)만 남아 있던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왔습니다. 주민들은 평상시에는 성 밖에서 생업에 열중하다가 왜구가 쳐들어오면 성 안으로 모였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재밌는 놀이가 하나 있습니다. 답성놀이(성밟기)입니다.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한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바퀴를 돌면 극락왕생한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답성놀이는 ‘성돌이’라고도 하는데 불교의 ‘탑돌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는 겨울에 얼었던 땅이 녹을 무렵 성곽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곳에선 살아서 극락세계를 다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헛소리냐고요? 예전에는 4년에 한번 윤 3월 초엿새나 열엿새, 스무엿새에 성돌이를 했습니다. 이날은 어떤 궂은일을 해도 귀신의 간섭이 없고 신도 관여하지 않아 ‘손 없는 날’로 여겨집니다. 바로 극락의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지요. 성돌이는 북문으로 들어가 성을 돌아서 다시 북문으로 나오는 방식입니다. ‘북문(北門)’으로 들어간다는 자체가 저승으로 향한다는 뜻이니 살아서 ‘북망산천’을 체험하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음력 9월9일인 중양절을 군민의 날로 정하고 이날에 축제를 엽니다.

북문으로 들어가 성곽 위를 걸어봅니다. 안쪽으로는 소나무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으며 바깥쪽으로는 고창읍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걸으면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너비입니다. 저만치 연인들이 서로의 허리를 감싸고 다정하게 걸어가네요. 이 길은 마치 성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돼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길은 정확히 안과 밖을 구획합니다. 성곽길을 걸으면 앞에 놓인 세상은 정확히 두개로 나뉘지요. 이 명확한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행여 당신은 종이 위에 저를 그려놓고 어디에다 동그라미를 둘러야 할지 들여다보기만 하고 계시지는 않은가요. 우리는 모두 ‘우리’가 되고 싶습니다. 세상은 동그라미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 깃발을 꽂으라고 재촉합니다. 세상은 안과 밖을 만들어놓고 지지 않으려면 싸우라고 하거나, 누군가를 외톨이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돼야 해요. 우리는 거대한 하나임을 너무도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닐는지요. 동그라미가 그려지기 전, 안도 밖도 없던 원래의 세상, 동그라미가 더이상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욕심일까요. 그날을 기다리며.

당신의 W가


글·사진=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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