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우유병에 담은 우윳빛 토란 막걸리

입력 : 2021-03-10 00:00 수정 : 2021-03-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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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 농업회사법인 ‘시향가’에서 담근 토란 막걸리 ‘시향가’. 곡성=김병진 기자 fotokim@nongmin.com

[우리 술 답사기] ⑦ 전남 곡성 시향가

토란농가 도우려 술 빚어

복고풍 막걸리병 SNS서 호평

미니형 ‘말이야 막걸리야’ 첫선

공장 짓고 수출 등 도전 계속

 

우유같이 부드러운 막걸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가벼우면서 산뜻한 맛에 머리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한모금 넘긴 다음에도 은은한 단맛만 남을 뿐 뒤끝이 없다. 토란 막걸리 <시향가>다.

토란으로 음식을 만든다면 흔히 토란국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남 곡성 농업회사법인 ‘시향가’의 양숙희 대표(39)는 달랐다. 전국 토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곡성에서 2019년 토란 막걸리 <시향가>를 출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

“곡성에 차고 넘치는 게 토란이지만 저는 물컹한 식감 때문에 싫어했어요. 하지만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토란농가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싶어서 토란으로 막걸리를 빚기로 결심했죠. 저처럼 토란을 싫어하는 사람도 마실 수 있는 술이요.”

토란 막걸리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토란은 수분이 많은 탓에 쉽게 갈변했고 무(無)맛, 즉 특별한 맛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2년 동안 토란을 삶고 굽고 찌고 튀기는 과정을 반복하며 최선의 조리법을 찾는 데 몰두했다.

“예전에 음식점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죠. 그러다 토란을 동결건조해 고두밥에 넣고 찌면 구수한 향기가 나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시향가’라는 이름도 거기서 따온 거예요. ‘술이 익을 때 나는 향기를 베푸는 집’이라는 뜻이죠.”

‘시향가’의 토란 막걸리 ‘토막’(왼쪽)과 이를 200㎖로 소분한 ‘말이야 막걸리야’.


칩 형태로 동결건조한 토란을 고두밥에 넣고 찐 다음 15일 숙성시킨 뒤 같은 공효정을 반복한 이양주가 8도 <시향가>, 토란가루를 넣어 만든 막걸리가 6.2도 <토막>이다. 둘 다 토란 막걸리지만 <토막>이 <시향가>보다 산미가 강하고 도수가 낮아 잘 넘어간다. 토란의 함유량은 20%나 된다. 주세법상 부재료 허용치가 20%라 최대치로 담은 것이다. 지난해 ‘시향가’에서 1년 동안 소비한 토란은 2t에 이른다. 토란뿐 아니라 친환경쌀도 곡성에서 재배한 것을 쓴다.

양 대표는 포장에도 공들였다. 2030세대가 전통주를 친근하게 느끼도록 현대적인 감성을 더했다. 흔한 막걸리병이 아닌 500㎖ 우유병에 막걸리를 담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느 날 서울의 지하철에서 한 여자가 가방을 열더니 화장품을 꺼내는 모습을 봤어요. 문득 저게 화장품이 아니라 막걸리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스병·우유병 등 다양한 병을 테스트해보다가 지금의 우유병에 담게 됐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레트로(Retro·복고) 느낌이 난다며 반응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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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숙희 ‘시향가’ 대표가 양조장 앞에서 토란 바구니를 안은 채 웃고 있다.


양 대표의 도전정신은 이달 곡성 청년챌린지마켓에서 첫선을 뵈는 막걸리 <말이야 막걸리야>에서도 묻어난다. <말이야 막걸리야>는 200㎖ 미니 막걸리로 <토막>을 소분한 것이다. 이 막걸리는 술지게미(주박)를 넣어 찧은 떡으로 만든 떡볶이와 함께 세트로 내놓을 예정이다. 또 13일부터 열리는 곡성 뚝방마켓에서 탭막걸리(생맥주처럼 디스펜서로 뽑는 막걸리) 형태로도 판매한다.

신축년은 양 대표에게 예년보다 바쁜 한해가 될 것 같다. 이달 토란 막걸리 원주의 도수를 낮춘 14.5도 을 내놓는다. 또 올해말까지 곡성에 4000㎡(약 1200평) 규모의 막걸리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양 대표는 이 공장에서 증류식 소주와 흑염소즙으로 빚은 과하주(혼양주)인 <흑세주> 등을 선뵐 예정이다. <시향가>의 해외 수출도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막걸리 전문가가 되려고 늦깎이 대학생도 돼보고, 술을 빚으며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어요. 그런데도 술을 빚을 때만큼은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죠. 세딸들이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뿌듯함을 느껴요. 앞으로 ‘시향가’가 100년 기업이 되도록 지역과 환경을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시향가>는 500㎖ 1병에 8900원, <토막>은 750㎖ 기준 7000원에 판매한다. <말이야 막걸리야>는 200㎖ 4병에 1만원이다. 막걸리는 아이디어스(idus.com), ‘시향가’ 스마트스토어(smartstore.naver.com/sihyangga)에서 만날 수 있다.

곡성=박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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