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55)형제(하)

입력 : 2021-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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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한 변 진사 안고 오열하던 오 처사

행랑아범에 큰절 올리며 땅문서 건네 …

 

오일장 발인 날이 밝았다. 망한 집안의 장례는 초라했다. 만장기도 없이 상여가 앞서고 상주 변 초시가 굴건제복 차림으로 뒤따랐다. 몇 안되는 일가친척이 그 뒤를 잇는데 오 처사가 상복을 입은 채 죽장을 짚고 맨 뒤에 따라갔다. 하관을 할 때 상주 변 초시가 만감이 뒤엉켜 통곡을 하는데 먼발치 솔숲에서 오 처사도 어깨를 들썩였다.

변 진사가 노름방에서 객사하던 날 행랑아범이 의원을 데려왔을 때 오 처사가 변 진사를 품에 안고 오열하고 있었던 일이 이상해 행랑아범은 유심히 오 처사를 지켜봐왔다. 더더욱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장례를 마친 며칠 후 이 집 주인이 된 오 처사가 집 정리를 했다. 노름꾼 꼽추와 그의 호위무사 털보를 바깥채에 기거하도록 하고 행랑아범을 사랑방에 모시고 자신은 행랑채 뒷방으로 갔다. 행랑아범이 어리둥절 어쩔 줄 모르는데 오 처사가 큰절을 올리며 “어르신, 이제부터 아버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하고는 꿇어앉아 행랑아범의 두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 집 주인은 아버님이십니다”라며 품속에서 집문서를 꺼내 행랑아범의 손에 쥐여줬다.

“이 집의 전답도 모두 아버님 소유입니다. 현청의 등기부등본도 아버님 존함으로 이전해놨습니다.”

비단 보자기에 싼 땅문서 높이가 한자를 넘었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어 입만 벌리고 있는 행랑아범에게 오 처사는 술 한잔을 올리고, 행랑아범이 따라주는 술 한잔을 받은 오 처사가 돌아앉아 술잔을 비웠다. 주거니 받거니 밤이 깊어가고 둘 다 술이 올랐다.

“소자는 어머니 성을 따라 오가가 됐습니다만 핏줄을 따르면 변가가 됩니다.”

행랑아범이 ‘땅’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이 “어머니가 오…오…오월이란 말인가?” 목소리가 떨렸다. 오 처사는 대답을 못하고 흐느끼고 있었다.

강산이 두번이나 변한다는 스무해 전. 매천댁이 천석꾼 부자 변 대인 댁에 시집왔더니 오월이란 예쁜 부엌데기 하녀가 입덧을 하고 있었다. 씨를 뿌린 작자는 신랑 변 진사였다. 새 신부 매천댁은 표독스러웠다. 쫓아내기 전에 태아를 유산시켜야 후환이 없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소복에 산발을 하고 입에서 피를 흘리며 칼을 물고 한밤중에 오월이 방에 들어가 그녀가 기절을 했지만 입덧을 멈추지는 않았다. 봉당에서 떠밀어 나동그라지게 해도 허사였다. 장날 오월이와 집사가 장터에 가서 매천댁이 사 오라고 한 걸 모두 사서 지게에 싣고 국밥집에 들어갔다. 보통은 집으로 돌아갈 때 고갯마루에서 주먹밥을 먹는데 그날은 달랐다. 오월이는 정신없이 국밥을 먹는데 집사는 탁배기를 자꾸 마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갯마루에서 쉬면서 집사가 한숨을 푹푹 쉬다가 입을 열었다.

“오월아, 아무것도 묻지 말아라. 주먹밥을 싸 들고 멀리멀리 도망을 가거라. 너는 저 솔숲 땅속에 파묻힌 몸이라 생각해라. 댕기를 잘라 내게 주고 이 보자기를 덮어써라.”

집사가 긴 한숨을 푸∼욱 토하더니 “손가락은 겁이 나서 못 잘랐다 할게”라고 말했다. 새파랗게 질린 오월이가 이빨을 깨물더니 지게에 걸린 낫을 빼 내리쳐 피가 솟구치는 손가락 하나를 떡갈잎에 싸서 집사의 조끼 주머니에 넣어줬다. 집사는 눈물을 떨구며 목이 메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둘이서 가시버시가 돼 아들딸 낳는 꿈을 꾸며 살았는데” 하고 울먹였다. 오월이가 집사의 목을 껴안고 매달려 기나긴 입맞춤을 하고선 어둠살이 내리는 고갯길로 사라졌다.

이십년 세월이 흘렀다. 오월이는 제물포에서 제일 큰 요릿집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도 낙태하려 했지만 끈질기게 세상 밖으로 나온 오 처사는 노름 바닥에서 알아주는 마작 대가가 됐다. 열다섯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해가 갈수록 당할 자가 없었다.

자신이 마작의 지존이라 자만에 빠져 있다가 마포나루터에서 임자를 만났다. 꼽추였다. 꼽추의 패를 만드는 솜씨에 오 처사는 혀를 내둘렀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전략이 없고 배짱이 없어 판을 키울 줄 몰랐고 노름판의 우격다짐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꼽추, 털보, 오 처사가 삼인조 마작단을 만들어 오 처사의 한이 맺힌 제천에 내려왔던 것이다. 이십년 전 오월이를 살려줬던 유 집사는 마흔세살 행랑아범이 돼 있었다. 울다가 웃다가 살아온 얘기에 감정이 복받쳐 오 처사와 행랑아범은 계속 술을 부어 달래는데, ‘똑똑똑’ 문고리 두드리는 소리에 술도 얘기도 끊어졌다. 변 초시가 들어와 오 처사에게 큰절을 올리며 “형님, 용서해주십시오. 으흐흐흑” 하고 흐느꼈다.

변 초시와 오 처사는 두살 터울 이복형제다. 사십구재를 올리고 탈상을 했다. 오 처사는 재산을 적당히 떼어 내주고는 변 초시와 그의 어미 매천댁을 내보냈다. 제물포의 오월이는 요릿집을 처분하고 제천으로 내려와 행랑아범과 조촐하게 혼례식을 올리고 합방을 했다. 오 처사와 꼽추와 털보는 어디론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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