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48)황장군

입력 : 202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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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서방, 장날 황장군 팔러 집 나서자 

덕순은 시집 안 간다며 생떼 쓰는데…

 

수송아지 한마리를 산 황 서방이 마당에 들어서며 “덕순아∼. 이놈이 네 시집 밑천이여”라고 소리쳤다. 열세살 덕순은 옷고름을 입에 물고 송아지와 마주했다. 송아지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자 덕순이 목덜미를 껴안았다. 따뜻했다. 밤에도 몇번이나 초롱을 들고 외양간에 가서 송아지를 쓰다듬었다. 뜨거운 구들장에 태워 먹은 이불로 이리 꿰매고 저리 기워 사흘 만에 송아지 조끼를 만들어 입혔다. 햇볕이 따뜻한 날 송아지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여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 황 서방이 코뚜레를 해야 한다는 걸 덕순이 한사코 반대해 황 서방이 졌다. 코를 뚫지 않고 고삐를 매던 황 서방과 빗으로 등을 긁어주던 덕순 부녀는 송아지 이름을 황장군으로 지었다. 황장군은 온종일 덕순을 따라다녔다. 말귀도 알아들어 덕순이 “장군아∼” 하고 소리치면 어디선가 달려왔다.

덕순은 가을걷이한 남의 콩밭을 헤매며 떨어진 낟알을 주워 모아 소죽가마에 넣었다. 3년이 지나자 황장군은 우람한 덩치에 정수리에 뿔 두개가 힘차게 솟아올랐고, 덕순은 이팔청춘 봄이 와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덕순에게 몇군데서 중매가 들어왔다. 고개 넘고 내 건너 중농 집안의 맏아들과 혼담이 무르익어 사주단자를 받았다.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 보름에 혼례를 잡았으니 한달 남짓 남았다. 화전 밭뙈기 쟁기질을 서둘러 하고 나니 장날이 왔다. 그날 아침 소죽가마에는 콩을 한바가지 넣어줬다. 황 서방이 황장군 고삐를 잡고 짤랑짤랑 워낭을 울리며 집을 나서자 식음을 전폐한 채 이불을 덮어쓰고 이틀째 울고만 있던 덕순은 맨발로 뛰쳐나와 황장군 목을 끌어안고 “아부지∼, 나 시집 안 갈래”라고 했다. 덕순 어미가 손바닥으로 덕순의 등짝을 후려치며 떼어내자 쓰러져 기절했다.

황 서방이 덕순을 안아 방에 눕히고 황장군을 다시 외양간에 넣었다. 황장군을 팔아야 혼수를 장만할 수 있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덕순은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생떼를 썼다. 중신아비가 왔다 갔다 하며 묘책을 만들어냈다. 신랑 집에서 황장군을 산 것이다. 진달래 화사한 춘삼월 보름에 혼례식을 올렸다. 덕순의 시집은 고을 부자는 아니어도 마을 부자 소리는 듣는 중농 집안인데 맏아들인 신랑은 농사는 안 짓고 이웃 친구와 산속을 헤매는 심마니가 됐다.

그 시절 호환(虎患)은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특히나 이 고을에서는 한해에 호랑이한테 물려 죽은 사람을 치자면 열손가락도 모자랐다. 관찰사가 명포수 다섯명을 보냈어도 허사, 호랑이 사냥 전담 부대인 착호갑사가 와서 두달 동안 주둔하며 샅샅이 뒤져도 호랑이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호환을 잊을 만했을 때 산나물 뜯으러 간 두 할머니가 처참하게 당했다. 이웃 친구간인 그 손자 둘이 할머니 원수를 갚겠다고 창을 들고 산을 헤매며 심마니가 됐다.

그중 하나가 덕순의 신랑 열아홉살 박대근이다. 그러니까 재작년에 덕순의 시할머니가 호환을 당한 것이다. 늙은 살인 호랑이가 멧돼지나 노루는 사냥하기 어려워 손쉬운 사냥감인 사람을 계속 해치는 것이다. 그러고나서 호환은 또 조용해졌다.

덕순이 시집살이 하는 사이 황장군과 가까워진 사람은 시아버지 박 생원이다. 논밭에 일하러 갈 때도, 싱싱한 칡넝쿨을 먹이러 갈 때도, 냇물에 목욕을 시킬 때도, 마실 갈 때도, 장터에 갈 때도 황장군과 박 생원은 붙어 다녔다.

산 너머 잔칫집에서 거나하게 취한 박 생원이 잔칫집 고샅 거리에 매어둔 황장군을 데리고 고개를 넘을 적에 그믐달 짧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숲속에서 두줄기 불이 줄줄 흘렀다. 그놈이 나타난 것이다. 박 생원은 선 채로 설설 오줌을 바지에 흘렸다.

호랑이 앞에서는 모든 짐승이 도망가기 바쁜데 황장군은 킁킁 콧숨을 크게 쉬더니 몸을 돌려 뛰어오르는 그놈에게 돌진했다. 우호상박! 뿔로 받고 발톱으로 할퀴고 “어흥” “음메” 산이 흔들리고 골짜기가 떠나갈 듯 피투성이 싸움이 이어졌다. 박 생원은 도망가지 않았다. 지팡이 창으로 황장군 등에 탄 호랑이의 옆구리를 찌르자 떨어지는 놈을 황장군이 들이받았다. 그놈이 비실비실 도망갔다. 동네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올라와 얼마 못 가 눈 속에 처박힌 그놈을 찾았다. 박 생원은 마침내 어머니 원수를 갚은 것이다.

신축년(辛丑年) 설날 아침이 밝았다. 박 생원 집 넓은 마당 한복판, 동네 젊은이들이 세운 스물넉자 장대 끝에 깃발처럼 호피(虎皮)가 펄럭이고 그 아래 멍석 위에는 황장군이 앉아 함지박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콩을 우물우물 먹고 있었다. 뒤꼍에선 닭 국물이 가마솥에 설설 끓고 돼지 수육 칼질하는 소리 땅땅거리고, 동네 사람들은 겨우내 다락에서 익은 머루주·더덕주를 들고왔다. “모야∼.” 윷판이 벌어지는데 사또와 육방관속 고을 유지들이 말도 없이 들이닥쳤다.

사또가 데리고 온 암소를 황장군 옆에 묶으며 “황장군의 새색시요∼” 하고 외치자 마당이 떠나갈 듯이 폭소가 터지고 박수가 쏟아졌다. 유지들이 황장군 목에 앞다퉈 전대를 걸었다.

그날 저녁나절에야 덕순이 신랑 대근과 함께 산 넘어 친정에 갔다. 황 서방에게 세배를 올린 대근이 자루를 내밀었다.

“아버님이 장인어른께 황장군값을 갖다 드리라 합디다.”

엄청난 돈 자루였다. 황 서방이 놀라 물었다.

“소값은 덕순이 시집도 가기 전에 벌써 받았잖아?!”

“그때 드린 돈은 계약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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