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눈물보고서 그후] 손에 쥔 것 없는 한해…“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입력 : 2020-12-30 00:00

[2020년 농가 눈물보고서 그후…] 

‘막다른 길에서 마주한 좌절과 절망도 이 땅 농부의 끈질긴 생명력을 넘어서진 못한다. 그래서 다시 희망이 움트게 된다.’

올 한해 농민의 눈가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1월 처음 발생한 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타난 이상저온·우박 등 각종 기상재해까지 악재의 연속이었다. <농민신문>이 올 7월 대표적으로 피해를 본 과수·양돈·화훼·친환경농산물·양봉 농가의 아픔을 다룬 ‘2020년 농가 눈물 보고서(이하 눈물보고서)’를 연재한 이후에도 고통은 멈출 줄 몰랐다. 유례없이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그야말로 농민의 몸과 마음은 쑥대밭이 됐다. 그러나 우리 농민에겐 결코 포기란 없다. 시련 속에서도 재기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눈물 보고서에서 소개된 농가들의 1년 소회를 들어봤다.

01010100501.20201230.001296256.02.jpg
사과농가 김기영씨가 과수 화상병 발생 매몰지임을 알리는 ‘발굴 금지’ 표지판을 잡고 황무지로 변한 과수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과농가 김기영씨

6~7년 소득 없이 투자만 할판
화상병 이전 과수원 회복 관건 


◆과수 화상병 피해 농가 김기영씨(충북 충주)=최근 만난 김기영씨(54·산척면)의 얼굴엔 아직도 그늘이 가득했다. 올여름 과수 화상병으로 3만9600㎡(1만2000평) 규모의 과수원에 심겨 있던 사과나무 수천그루를 땅에 묻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라면서 “자식 같은 사과나무를 묻는 악몽에 지금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몸서리를 쳤다.

생계가 막막해 사과나무 묻은 자리에 콩·깨 농사로 1000만원 가까운 소득을 올렸지만 생활비조차 대기 어려웠다는 김씨. 화상병에 걸린 과수원은 3년간 밭작물밖에 재배할 수 없고, 이후 사과나무를 심어도 첫 수확까지 최소 3∼4년이 걸린다. 다시 사과농사를 짓는다 해도 꼬박 6∼7년은 소득 없이 투자만 해야 하는 게 그의 어깨를 더욱 짓누른다.

김씨는 “내년 다시 사과농사를 준비할 계획인데, 화상병 이전의 과수원을 회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방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내비쳤다.

01010100501.20201230.001296161.02.jpg
11월 후보돈을 재입식한 양돈농가 오명준씨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과 사양관리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양돈농가 오명준씨

13개월 만에 후보돈 재입식
새해 무사히 돼지 출하 바라 

◆양돈농가 오명준씨(경기 연천)=“후보돈을 보면 마음 한쪽에 희망이 차오르지만 불안함도 여전합니다.”

양돈농가 오명준씨(40·전곡읍)는 11월 후보돈 900마리를 재입식했다. 지난해 9월 인근 파주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후 예방적 살처분 명령에 따라 돼지 1만2000마리를 묻은 지 13개월 만이다.

오씨는 “재입식 땐 정말 감격스러웠다”며 농장에 돼지를 다시 들이던 때의 기쁨을 전했다. 어렵사리 재입식한 만큼 성공적인 출하를 위해 사양관리와 방역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오씨. 하지만 그는 “요즘 다시 막막함을 느낀다”며 “14개월을 더 버텨야 하는데 그동안 투입될 운영비도 걱정되고, 융자도 한계에 달해 더이상 돈 빌리기도 쉽지 않아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토로했다.

양돈을 하면서 가장 힘든 한해를 힘겹게 버티고 견딘 오씨의 새해 바람은 돼지를 탈 없이 무사히 출하하는 것이었다.

01010100501.20201230.001296258.02.jpg
장미농가 신윤화씨가 생활 속 꽃 소비가 살아나길 간절히 희망하며 수확을 앞둔 장미를 살펴보고 있다.

장미농가 신윤화씨

연말 가격 폭락 사태 재연
꽃 생활화 자리 잡았으면…  


◆장미농가 신윤화씨(경남 김해)=“언제쯤 이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는지….”

장미농사를 짓는 신윤화씨(51·대동면)는 올해 코로나19로 입은 치명타에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연초부터 불거진 코로나19 사태는 각종 모임과 행사 취소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화훼 소비가 급감하고 값도 폭락했다. 11월 이후, 연기됐던 결혼식들이 치러지면서 잠시 반등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이내 다시 곤두박질쳤다.

신씨는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거리 두기가 강화돼 올해초와 비슷한 꽃값 폭락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며 “내년에도 이럴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훼 소비촉진과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꽃 소비의 생활화가 중요하다”면서 “가정과 사무실·학교 등에서 꽃 생활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01010100501.20201230.001296158.02.jpg
학교급식용 친환경채소 생산농가 염현수씨가 시설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겨울상추의 생육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친환경농가 염현수씨

학교급식 중단…수익 반토막
잎채소 다시 파종 “회복 희망” 


◆친환경 학교급식 농가 염현수씨(경기 고양)=“한평생 농사지었지만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처음입니다. 그래도 친환경농사를 포기할 순 없죠.”

친환경채소류를 생산해 학교급식으로 납품하는 염현수씨(63·덕양구 내유동)는 악몽 같은 1년을 보냈다.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수익은 반토막도 안된다.

1학기 납품을 아예 하지 못한 상황에서 2학기에도 등교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등교일수가 3분의 1로 줄어든 가운데, 그마저도 수도권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초·중·고등학교 등교가 전면 중단됐다. 이에 염씨는 친환경채소를 일반채소 가격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친환경 학교급식 농가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래도 염씨는 자신의 영농철학이 담긴 친환경농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시설하우스 15동에 각종 잎채소류를 다시 파종한 그는 “내년에는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모든 일상이 회복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01010100501.20201230.001296325.02.jpg
양봉농가 이윤철씨의 부인 곽행자씨가 올해 뜬 꿀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씨는 다른 지역 상황을 살피기 위해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

양봉농가 이윤철씨

채밀 거의 못해…2억대 손해
벌 귀히 여기는 풍토 조성 필요

◆양봉농가 이윤철씨(전남 담양)=이윤철씨(68·고서면)의 양봉농장 ‘그린 꿀벌농원’엔 겨울철이라 그런지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씨는 올해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양봉업에 종사한 이래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봄철 언피해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초 물난리까지 겪었다.

“올핸 채밀을 거의 못했습니다. 벌통 400군에서 보통 연간 30드럼(1드럼당 288㎏) 정도 꿀이 나오는데, 올해는 손에 쥔 게 거의 없어요. 1드럼의 소매값을 700만원꼴로 봤을 때 손해가 2억원을 족히 넘기죠.”

현재 상황을 묻는 말에 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웠다. 꿀벌이 한창때 먹이활동을 왕성하게 하지 못해 면역력과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벌들은 동면에 들어갔지만 이씨는 요즘도 양봉장을 자주 찾는다. “상황이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라도 바쁘게 일손을 잡아야 잡념이 없어지거든요. 벌을 귀히 여기지 않는 풍토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충주=김태억, 연천·고양=유건연, 김해=노현숙, 담양=이문수 기자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