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47)밤의 여왕(하)

입력 : 2020-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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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집 차려 ‘제물포 큰손’ 된 모녀

행복도 잠시, 풍매가 몸져눕는데… 

 

세월이 흘러 세리는 아리따운 여인이 됐다. 세리는 독특한 미모를 뽐냈다. 색기(色氣)를 뿜으면서도 지적(知的)이었다. 요리상에 둘러앉은 손님 사이에 풍매 대신 가끔 세리가 앉기도 했다. 제물포 최고의 요릿집에 오는 손님들은 돈 많은 거상이거나 벼슬아치들이다. 세리의 미모와 재기 넘치는 화술에 혀를 내두르지 않는 손님이 없었다. 풍매는 요릿집으로 돈을 벌 생각이 없다. 요릿집은 장차 문을 열 기생집의 맛보기였다.

그때 제물포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기생집이 매물로 나왔다. 풍매도 잘 아는 기생 출신 주인 여자의 기둥서방이 소금 장사를 한다고 통 크게 놀더니 쫄딱 망해 기생집을 안고 넘어진 것이다. 풍매가 얼른 계약금을 찔렀다. 요릿집을 팔아 중도금까지 치렀는데 잔금 천이백냥이 문제였다. 잔금 치러야 할 날짜는 보름도 남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쫓아다녀도 팔백냥이 모자랐다. 풍매가 잔금을 못 구해 계약이 무효가 된다는 소문이 제물포에 파다하게 퍼져 돈놀이하는 큰손들이 일부러 돈줄을 막아버렸다.

기진맥진한 풍매가 드러누웠다. 그 와중에 세리는 가출을 했다. ‘난파선에서 뛰어내린 것인가.’ 풍매가 이를 갈았다.

사흘 만에 세리가 돌아왔다. 안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운 엄마, 풍매 머리맡에 앉아 품속에서 뭔가 꺼내 그녀 손에 쥐여줬다. 팔백냥 돈표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풍매가 문을 박차고 달려나가 잔금을 치르고 집문서를 받아왔다. 조기잡이 어선 다섯척에, 청나라를 오가는 무역선 두척에, 염전을 십만평이나 가진 황 선주가 요릿집에 들락거리며 머리를 얹어주겠다고 진즉에 세리에게 마수를 뻗쳤지만, 미소로 거절하던 세리가 이번에 황 선주와 새로 협상했다. 머리를 얹어주면 살림을 차려야 하는지라 세리는 초야권(初夜權)을 팔백냥에 팔았던 것이다.

세리는 초야를 치르고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제물포 한복판 천여평 대지에 연못을 가운데 두고 기화요초 사이사이 날아갈 듯한 별당이 일곱채나 빙 둘러앉은 기생집이 풍매 품에 안겼다.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기생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집이 떠나갈 듯하고 청사초롱 불 밝히고 고수 장단에 흥겨운 창 소리 흐르니 손님으로 넘쳐났다.

청나라 광저우로 가는 황 선주네 무역선에 세리가 동승했다. 제물포에서 세개의 돛을 올린 용왕호는 높새바람을 안고 남서쪽으로 유유히 미끄러졌다. 스무하루 만에 주하이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 용왕호는 광저우에 닿았다. 황 선주는 휘청거리며 용왕호에서 내려 사업을 하러 가고 세리는 거기서 멀지 않은 천하의 색향(色鄕) 둥관으로 갔다. 둥관은 화류계에 몸담은 여인이면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유흥의 성지다. 한달여가 지났다. 용왕호가 제물포로 출항하는 때를 맞춰 세리가 짐꾼을 앞세우고 포구로 돌아와 승선했다. 팔도강산 한량들이 세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색향 둥관에서 한달 동안 배운 기상천외한 유흥업소 운영 기법을 써먹었다. 세리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지 못한 사람은 한량 행세를 할 수 없었다.

세리 엄마 풍매가 드러누웠다. 백약이 무효, 병은 점점 깊어가 곡기를 끊다시피 했다. 가을바람이 스산한 시월상달에 풍매가 눈을 감았다. 사십구재를 지내고 탈상을 했다.

기생집을 다시 열자 사십구재 때 언뜻언뜻 봤던 이십대 중반의 백면서생 선비가 나타나 품속에서 집문서를 내보였다.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풍매는 세리를 이용만 해먹고 재산을 물려준 사람은 결국 친정 조카였다. 세리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네 주인 나으리,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그믐날에 치부책 결재를 해주십시오.”

과거에 매달려 스물다섯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골방에 처박혀 책만 보느라 세상 물정도 모르는 백면서생이 복잡한 기생집을 떠맡았으니 세리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믐날이 되자 시골에서 백면서생이 제물포로 올라와 치부책을 결재하겠다고 기생집을 찾아왔다. 쉰여명의 기생들이 제 옷을 찾아 입고 화장을 하느라 부산하고 각종 해산물이 들어오며 세리의 점검을 받고 하나하나 치부책에 기록하고 육류와 채소…. 드넓은 부엌에서는 땅땅 칼질 소리에 집이 떠나갈 듯했다.

백면서생은 쪽마루에 앉아 얼이 빠졌다. 해가 지자 풍악이 울리고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백면서생은 내실로 모셔졌다. 술상이 들어오고 세리가 들어오고 문이 잠겼다. 이튿날 아침, “서방님 잘 주무셨습니까?” 백면서생은 최면에 걸린 듯 세리에게 집문서를 넘겼다. 세리의 지시로 백면서생은 시골에서 이사와 요릿집 하던 그 집으로 들어갔다.

한달에 한번 그믐날에 세리가 치부책을 들고 가면 백면서생은 보지도 않고, 봐도 뭐가 뭔지 몰랐다. 제물포에 거지들이 자취를 감췄다. 황 선주의 염전으로 가고, 조기잡이 배를 탔다. 그리고 다리 밑 움막집 거지들은 세리가 마련해준 열두채의 집으로 들어가 살며 세리가 단골손님 거상들에게 부탁해 만든 일자리를 얻었다. 기생 세리는 개같이 돈을 벌어 정승처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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