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46)밤의 여왕(상)

입력 : 2020-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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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옷 여인, 거지 아이 훑어보더니

기와집 데려가 먹이고 씻기는데…

 

거지 여자아이가 대장간 화덕 옆에서 거적때기를 덮고 밤을 새우고 나와 국밥집 앞 쓰레기통을 뒤지는데 옆에서 웬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뚫어지게 내려다봤다.

“어디 보자.”

여인의 한마디에 거지 아이가 놀라서 일어서자 그 여인은 아이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거지 아이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더니 두말없이 따라갔다. 걸음걸이가 살랑살랑 경박스러웠지만 금박공단 장옷에서 삐져나온 치마도 비단옷이었다.

그녀가 들어간 집은 포구에서 멀지 않은 아담한 기와집이다. 여인은 안마당에 들어서더니 “삼월아, 얘 아침상을 차려줘라”고 한마디 하고서 계속 거지 아이를 훑어봤다. 바깥 날씨는 쌀쌀했지만 아이의 차림새가 워낙 지저분해 쪽마루에 개다리소반을 놓았다. 하얀 쌀밥, 고깃국에 조기 구이 한마리!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싹싹 긁어 상을 비우자 삼월이도 그 여인도 빙긋이 웃었다.

“삼월아, 가마솥에 목간 물 좀 데워라.”

그 여인이 조용히 나무통의 물을 저으며 “옷을 벗고 들어오너라” 하자 거지 아이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따뜻한 나무통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여인이 거지 아이가 입던 옷을 아궁이로 처넣었다. 지난여름에 씻고 처음이라 때가 새까맣게 온몸을 도배했다.

“이름이 뭐냐?”

“오미화라 합니다.”

“촌스럽다. 몇살이냐?”

“열한살.”

“못 먹어서 여덟살 골격이다. 쯧쯧쯧쯧 ….”

그 여인은 미화의 몸을 씻으며 몸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더듬었다. 목욕을 마치고 안방으로 와 감싸고 온 치마를 치우자 미화가 옹크리고 주저앉았다.

“일어서거라.”

미화는 거역할 수 없었다. 여인은 미화의 엉덩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화는 덜컥 겁이 났지만 꾹 참았다.

“너는 오늘부터 이 집 식구다. 나를 이모라 불러라.”

삼월이가 장터에 후딱 다녀오더니 미화의 속옷부터 치마 세벌, 저고리 세벌을 사왔다.

“오늘부터 너의 이름은 세리다, 오세리. 알았지?”

“네. 이모님.”

꿈같은 일이 불과 반나절 사이에 일어났다. ‘이게 진정 꿈은 아니겠지?’ 미화는, 아니 세리는 자기 볼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이모네 집은 제물포의 최고급 요릿집으로 점심 한상, 저녁 한상 하루에 딱 두번 예약 손님만 받았다. 손님상에는 우아하게 차려입은 이모가 항상 함께하며 농담과 웃음을 나눴다.

손님들이 가고 나서 요리상을 들고 부엌에 들어오면 반도 안 먹은 산해진미를 찬모와 삼월이가 먹으며 세리도 불러들였다. 세리는 선천적인 붙임성으로 출퇴근하는 찬모와 살짝곰보인 삼월이를 깍듯하게 대했다. 세리는 이모와 안방에서 잤지만 가끔 넓지 않은 대청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건넛방에서 삼월이와 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삼월이가 솜으로 세리의 귀를 막았다.

사실 이모는 풍매라는 이름으로 제물포에서 알아주는 기생이었다. 천하의 명기도 세월한테는 이길 수가 없어 서른이 되자 눈 밑에 자글자글 주름이 지고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들던 벌떼·나비떼도 더는 찾아들지 않았다.

흥청망청 돈을 쓰고 기둥서방한테 전대를 맡겼던 기생들은 나이가 차면 하류 기생이 돼 장돌뱅이들한테 엽전 몇닢을 받고 몸을 팔거나 들병이가 되기 십상인데 풍매는 영리했다. 벌과 나비가 찾아들 때 돈을 모았다가 새파란 기생들한테 밀리자 서슴없이 그 바닥에서 나와 요릿집을 차린 것이다.

자식도 없고 신랑도 없는 풍매는 늙고 병들었을 때를 대비해 딸을 하나 만들어야 했다. 요릿집과 기생집은 전혀 다른 장사다. 풍매의 원대한 계획은 딸을 앞세워 결국은 기생집을 차리는 것이다.

일년이 지나자 세리가 꽃처럼 피어났다. 어느 날 풍매는 삼월이가 보는 앞에서 세리를 앉혀놓고 “오늘부터 나를 엄마라 불러라. 너는 내 딸이다”라고 했다.

감격한 세리가 일어서더니 큰절을 세번 올렸다. 그 나이 때는 하루가 다르게 인물이 변하기에 풍매는 일년 동안 세리를 유심히 지켜봤다. 삼월이한테 들었던 얘기인즉 풍매의 딸 후보가 둘이나 들어왔다가 다섯달·아홉달 만에 쫓겨나고 세리가 딸로 최종 낙점을 받은 것이다.

세리는 일곱살 때까지 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사자소학·동몽선습을 떼 글 실력에 풍매가 깜짝 놀랐다. 풍매는 요릿집 치부책을 세리에게 맡겼다. 어느 날 손님들을 보내고 얼큰히 술이 오른 풍매가 “세리야, 네가 갈 길은 두갈래다. 너의 생모가 걸었던 길을 갈래, 내가 걸어온 길을 갈래?”라고 물었다.

가난에 찌들어 약 한첩 제대로 못 써보고 죽은 어머니의 길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세리는 “살아계신 엄마의 길을 따라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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