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345)울음바다

입력 : 2020-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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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약속했던 최록 아기 낳은 지월 최 부자네 안마당서 목을 매는데…

 

다리 아래 거지 떼 아이들 일곱은 아침밥을 구걸하러 모두 흩어지고, 거지 대장 걸보어른 혼자 움막에서 뚫어진 구멍을 꿰매고 있었다. 그때 구걸 나갔던 거지 한 녀석이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걸보어른이 놀라서 눈만 크게 뜨고 있는데 거지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최 부잣집 앞을 지나가는데 대문 앞에서 얘가 울고 있지 뭐예요. 대문을 쾅쾅 아무리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강보에 싸인 아기를 받아 든 걸보어른은 난감해졌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걸보어른이 아기를 안고 최 부잣집으로 갔다. 사랑방 문을 열고 땅땅 곰방대를 두드린 최 부자가 걸보어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손자 손녀가 넘쳐 나. 얼어 죽게 던져놓든가 삶아 먹든가. 썩 꺼지지 못할까∼!”

걸보어른이 다리 밑 움막으로 돌아와 불 앞에 앉자 배가 고픈 아기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날이 새면 걸보어른과 머리 큰 거지 아이는 포대기에 아기를 싸안고 젖동냥을 나가고, 밤이 되면 걸보어른이 아기를 안고 모닥불 옆에서 밤을 새웠다. 두달쯤 지나자 아기는 생글생글 웃어 거지 아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상한 일이 있었다. 언뜻언뜻 웬 여인이 다리 주위를 서성거리다 거지들과 눈을 마주치면 몸을 숨겼다. 걸보어른은 알았다. 아기의 어미라는 걸.

어느 날 밤,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삼신할미는 무심하네. 배고파 우는 아기에게 젖 한모금이라도 좀 보내주지 않고.”

걸보어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움막 밖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걸보어른이 조용히 나가 아기 어미를 데리고 들어오자 어미는 와락 아기를 안고 어깨를 들썩였다. 한참 흐느끼던 아기 어미는 돌아앉아 젖을 물렸다. 밤이 깊어 어린 거지들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아기 어미와 걸보어른의 얘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얘기 사이사이엔 아기 어미의 흐느낌이 채워졌다.

귓불에 솜털이 가시지 않은 열일곱살 아기 어미 지월은 일찍이 제 어미를 여의었다. 제 아비 이 초시는 새장가도 가지 않은 채 지월을 데리고 여기저기 훈장 노릇을 하며 떠돌아다녔다. 지난겨울 훈장님이 숙부상 부고를 받고 고향에 갔을 때 최 부자의 셋째 아들 최록이 서당으로 잠입해 지월을 덮쳤다. 죽은 어미한테서 받은 은장도로 목을 겨누자 최록은 눈물을 보이며 지월과 혼인하지 못하면 이 세상을 등지겠다고 문고리에 목을 맸다. 놀란 지월이 문고리에 맨 끈을 은장도로 끊어버리자 최록은 손가락을 깨물어 지월과 백년해로하겠다고 혈서를 썼다.

새벽닭이 울 때 최록은 꽃 피는 춘삼월에 혼례를 올리자는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석달이 지나기 전에 최 부자의 셋째 아들이 강 건너 권 참사의 둘째 딸과 혼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설상가상, 아버지 훈장이 끝없는 기침에 피까지 토하더니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지월의 배는 불러왔다. 혼자 탯줄을 끊고 출산을 하고선 한달 후 새벽닭이 울 무렵 포대기에 아기를 싸안고 새벽길을 걸어 최 부자네 대문 앞에 아기를 놓고, 멀리서 몸을 숨겨 지켜보다가 다리 아래까지 따라왔던 것이다.

거지 아이들이 들뜬 아침이 밝았다. 최 부잣집 잔칫날이다. 평소 최 부잣집에 밥 빌러 각설이를 갔다가는 쪽박 깨어지기 십상이지만 오늘 같은 잔칫날엔 고깃국 한그릇 얻어먹겠지. 아기를 안고 한참 울던 지월이 걸보어른에게 큰절을 올리더니 아기를 맡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걱정을 하던 걸보어른이 열다섯살, 열네살 거지 아이 둘을 불러 귓속말을 했다.

최 부자네 잔칫집이 발칵 뒤집혀졌다. 앳된 처녀가 안마당가 디딜방앗간에서 목을 맨 것이다. 지월이다. 다행히 거지 아이 둘이서 한 녀석은 지월을 안고 한 녀석은 낫으로 새끼줄을 끊어 사람은 살려냈지만, 잔치판은 아수라장이 되고 새색시가 탄 가마는 대문 앞에서 돌아갔다. 신부 측 권 참사의 하객으로 말을 타고 왔던 고을 사또가 노하여 지월을 동헌으로 압송했다.

“저년을 형틀에 묶으렷다∼”

그때 걸보어른이 앞으로 나와 지월의 기막힌 사연을 차근차근 사또에게 고했다.

“여봐라∼ 새신랑 그놈을 잡아 오렷다!”

새신랑 최록은 줄에 묶여 오고, 그 아비 최 부자는 그 뒤에 헐레벌떡 따라왔다. 형틀에 묶이기도 전에 사색이 된 최록이 말했다.

“사또 나리, 제가 잘못했습니다. 지월이와 혼례를 올리겠습니다.”

사또가 지월을 내려다봤다. 지월은 당찼다.

“저런 인간과 혼례를 올릴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한평생 제 아들과 살겠습니다.”

사또가 고함쳤다.

“최 부자는 듣거라. 논 백마지기와 돈 천냥을 사흘 내로 지월이에게 건네주도록 하라.”

지월이 동헌 마당에서 사또에게 큰절을 올리고 걸보어른과 거지 떼들과 현청을 나오자 ‘철썩, 철썩’ 곤장 소리와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최록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다리 아래 움막집은 지월의 얘기에 울음바다가 됐다.

“걸보어른은 오늘부터 제 삼촌이시고 얘들은 모두 동생들입니다. 넓은 기와집을 사서 우리 모두 함께 삽시다. 이제는 구걸하는 거지가 아니고 모두가 농사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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