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습격, 논밭·농작물 ‘쑥대밭’… 철조망도 무용지물

입력 : 2020-07-17 00:00
경북 예천의 김현중씨가 멧돼지가 파헤쳐놓은 고구마 줄기와 뿌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야생동물 습격 막을 묘수 없나 (상)피해 실태

멧돼지·고라니 들락거리며 고구마·옥수수밭 등 헤집어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피해 갈수록 출현 빈도도 잦아져

농가들 “해마다 반복…답답”
 


고구마와 옥수수·수박 심지어 사과까지…. 멧돼지·고라니 등 야생동물의 습격으로 애써 키운 농작물에 피해가 잇따르면서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논밭 나들이를 시작하는 ‘진격의 멧돼지’ 앞에선 철조망과 그물망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게 농민들의 공통된 얘기다. 그나마 효과가 있는 게 전기울타리지만 비용 부담으로 소농들은 설치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본지가 피해 지역을 돌며 농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하편에선 실천 가능한 대책도 종합적으로 짚어본다.



“알이 굵어진 줄 어떻게 알았는지 멧돼지가 하룻밤 새 고구마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습니다.”

경북 예천군 보문면 신월리에서 3만3000㎡(1만평) 규모로 고구마를 재배하는 김현중씨(67)는 멧돼지가 파헤쳐놓아 엉망이 된 밭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김씨의 고구마밭 일부는 고구마 줄기가 뽑히거나 끊어져 수확을 포기해야 할 실정이다. 김씨는 “전기울타리를 설치한 밭을 제외하곤 해마다 멧돼지가 달려들어 피해가 크다”며 멧돼지가 먹다 버린 고구마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이웃 마을 간방리에서 고구마농사를 짓는 박시우씨(71)도 고구마밭 2640㎡(800평) 가운데 990㎡(300평)가 흙이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봤다. 박씨는 “철조망과 그물망을 설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며 “멧돼지가 계속 고구마밭을 제집 드나들듯 하고 있어 아예 수확을 포기했다”고 허탈해했다. 그는 “전기울타리가 효과가 좋다는 건 알지만 비용이 부담돼 설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감천면 덕율리의 최창후씨(32) 역시 수확을 코앞에 둔 3960㎡(1200평)의 옥수수밭이 망가지는 피해를 당했다. 멀리 충북 괴산까지 가서 씨앗을 구해 심은 옥수수밭이 두차례 멧돼지 습격으로 엉망이 됐다. 마을과 불과 200여m 떨어져 있지만 멧돼지가 수시로 들락거려 폭격 맞은 듯 휑한 곳이 여러곳이었다. 귀농 후 이제 갓 농사에 눈을 뜨고 있다는 최씨는 “최근 포장상자 2000개를 주문하고 직거래 예약까지 받아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그렇잖아도 농사일이 힘든데 야생동물 때문에 더 맥이 빠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에서 수박을 재배하는 황창호씨(59)는 “멧돼지가 수박을 먹거나 짓밟아 피해가 심각하다”며 “그물망을 설치했지만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수박이 굵어지면 멧돼지가 더 달려들 텐데 앞으로가 큰일”이라며 걱정했다.

경남 진주시 정촌면 일대 농민들도 야생동물로 속을 태우고 있다.

농민들은 그물망과 울타리를 치는 등 피해를 막고자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부족이다. 김갑부 소곡리 이장(58)은 “3년 전부터 멧돼지와 고라니들이 울타리를 뚫고 들어와 고구마·옥수수밭을 망쳐놓기 일쑤”라며 “갈수록 야생동물의 출현 빈도가 잦아져 농작물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멧돼지들은 논에도 들어가 뒹굴고 헤집고 다니며 난장판으로 만든다”면서 “해마다 피해가 반복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충북지역에서도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의 이충민씨(34)는 최근 수확을 앞둔 2696㎡(810여평) 규모의 옥수수밭이 멧돼지의 공격으로 엉망진창이 됐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옥수수대는 힘없이 쓰러졌고 영글기 시작한 옥수수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멧돼지의 습격으로 쓰러진 충북 진천군 초평면 소재 한 과수원의 사과나무. 사진제공=초평면사무소

인근 지역 고구마밭 역시 바닥이 훤히 드러나도록 들쑤셔져 있었다. 심지어 멧돼지들은 사과 과수원에도 들어가 사과를 따 먹고 나무까지 쓰러뜨렸다. 농민들은 “멧돼지 피해를 줄이고자 철조망을 쳐보지만 무용지물”이라며 “정부나 지자체가 획기적인 개체수 감소방안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주시 노은면에서 복숭아농사를 짓는 신기식씨(63)는 “현재 멧돼지 수렵지역을 일정 구역으로 나눠 돌아가며 지정하다보니 개체수가 줄지 않고 있다”며 “전 지역을 수렵구역으로 일괄 지정,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예천·봉화=오현식, 진주=노현숙, 진천·충주=김태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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