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여행] 여기도 반짝! 저기도 반짝! 작은 생명의 빛, 숲을 수놓다

입력 : 2020-07-13 00:00 수정 : 2020-07-13 23:47
제주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곶자왈 숲에서 만난 반딧불이.

코로나 시대 여름휴가 (하)밤이 아름다운 농촌마을

‘지상의 별’ 반딧불이 여행

친환경농법 늘어 곳곳 서식 숲속이나 논두렁서 기다리면

작은 초록별 향연 볼 수 있어

제주 청수리곶자왈 숲 등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유명
 

여름을 즐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밤을 즐기는 것이다. 낮을 지배하던 빛이 물러나고 어둠이 주인이 되는 시간. 세상은 온전히 다른 색깔이 된다. 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중 가장 특별한 방법은 농촌에 있다. 논두렁에 앉아 칠흑 같은 밤의 장막을 수놓는 반딧불이를 보는 것, 쏟아질 듯 반짝이는 은하수를 보는 것, 가까운 바닷가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듣는 것. 어느 도시의 여름밤이 이보다 더 특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여름, 한적하고 평화롭고 그리고 어느 밤보다 특별할, 농촌의 밤을 즐기러 떠나보자.

 


반딧불이는 오래된 노래 가사에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애니메이션 속에나 있는 건 줄 알았다. 살아가는 동안 진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종의 판타지라 생각했다. 종종 반딧불이를 보러 해외로 간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려왔지만 그저 남의 이야기로 여겼다. 게다가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외여행은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시절 아닌가.

그런데 얼마 전부터 속닥속닥, 소곤소곤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여기도 저기도. 길 가다가 한두마리, 수풀에서 여러마리, 습지에서 산속에서 무리로. 반딧불이가 돌아왔다. 반딧불이라고 인터넷 검색창에 치기만 하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사진들이 주르륵 올라왔다.

알고보니 요즘 어지간한 농촌마을에서는 반딧불이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곳이 늘어나고 생태를 보전하려는 노력이 더해지면서 청정지역에서만 산다는 반딧불이가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장소와 시간을 잘 맞추기만 하면 환상적인 반딧불이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이 여름이 지나가기 전이어야 한다. 반딧불이는 6~9월에 활동한다. 초여름에 나타나는 반딧불이는 애반딧불이로 꼬리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공중을 날아다닌다. 늦여름이면 늦반딧불이가 등장하는데 암컷은 날개가 퇴화되서 날지는 못하고 풀잎에 붙어서 반짝반짝 신호를 보낸다. 어느 쪽이든 환상적인 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찾아간 곳은 경남 거제. 거제를 찍는 사진작가 류정남이 알려준 곳은 의외로 유명 관광지인 신선대 전망대 주변이었다. 야트막한 언덕에 수풀이 우거져 있는 데다 주변에 물이 있어 반딧불이 출현이 많다고 했다.

어둠이 내리자 인적이 끊기고 정적이 들었다. 혹여 방해될까 저어돼 발걸음 소리마저 죽여가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감감무소식. 시간은 오후 10시를 넘겨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데 반딧불이는 어디 숨어 있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못 보는 건가. 포기하려는 순간 어둠 저 깊은 곳에서 반짝, 불빛이 깜박인다. 두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니 또 한번 반짝, 다시 반짝. 진짜다. 반딧불이다. 드디어 봤다. 이제 이놈들이 날기만 하면 된다. 날아라. 어서.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습기가 너무 많은 날이면 날개가 무거워서 날지 못한다던 류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날짜가 바뀌어 새벽이 될 때까지 기다렸지만 놈들은 날지 않았다. 이유 없는 배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포기란 없다. 여름은 이제 시작이다. 이번엔 충남 홍성의 논 지대다. 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농로 옆을 흐르며 냇물을 이루고 그 옆에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김금녕 홍성군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어둠이 깊어지고 주변 불빛도 꺼져 반딧불이를 방해하는 것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물론 기다린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딧불이를 보는 경험은 사람이 아니라 온전히 반딧불이에게 달렸다는 아리송한 말도 남겼다.

경남 거제시 남부면에서 촬영한 반딧불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풀썩 주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뜻 그대로의 칠흑이 펼쳐졌다. 빛이 사라지자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할 일 잃은 눈 대신 한껏 예민해진 귀로 자연의 소리가 몰려든다. 개골개골, 졸졸, 사락사락. 낯선 곳, 어둠 속에서 무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편안하다. 평화롭기까지 하다. 아, 빌어먹을 반딧불이 못 본들 어떠리. 이 논두렁의 밤이면 여름 선물로 충분하다.

욕심을 덜어내고 몸을 일으키는데 눈앞에서 불빛 하나가 유영한다. 불빛을 길게 빼고 논 위로 수풀로 다시 눈앞으로, 반딧불이가 춤추며 돌아다닌다. 넋을 잃고 따라가다보니 개울 옆 수풀 위로 반짝반짝 불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 빛 같다는, 김 사무국장의 말이 바로 떠오른다. 멋지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반딧불이를 좇다보니 어느새 자정이다. 반딧불이, 좋았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낸 농촌의 여름밤 그 자체가 좋았다. 반딧불이는 그저 덤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반딧불이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주르륵 뜬다. 요즘 가장 핫한 곳은 제주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곶자왈 숲. 입장을 위해서는 마을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충남 금산군 제원면의 금강변 일대, 아산시 송악면 궁평리 송악저수지 일대도 유명하다. 사진 찍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굳이 유명한 곳을 찾을 필요 없다. 친환경농업을 표방하는 농촌마을에서라면 대부분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거제·홍성=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사진=임승수, 류정남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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